김대식

 토니앤가이 대표이사

 

세상엔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이 어울려 살고 있다. 그게 인생법칙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불행하다고 느끼면 불행한 사람이 되고, 행복하다고 느끼면 행복한 사람의 범주에 속한다.

쥐락펴락 하는 그 무엇이 있어 행복하기보다 ‘느낌’만으로 행복과 불행의 한계를 넘나드는 경우가 우리 주변에서 수없이 목격된다.

누구나 행복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불행하다고 믿으며 불행한 사람일수록 운명론을 믿기 쉽다. 그리고 불행하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경우이다. 고난의 현실을 헤쳐 나가겠다는 의지는 뒷전인 채 운명을 탓하며 불행의 늪에 빠져드는 것이다.

“커다란 코끼리가 조그만 말뚝에 가는 줄로 매어 있어도 꼼짝 못하는 것은 스스로 못한다고 믿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대개의 불행한 사람들은 어려운 환경과 여건을 헤쳐 나가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지레짐작으로 “어렵다.”, “할 수 없다.”를 습관처럼 반복 한다. 그런가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잘 살고 못 사는 것은 팔자소관이고 또한 운명이라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

성공한 사람들 가운데는 몹시 어려운 환경에서도 그 자신의 슬럼프에서 박차고 나와 뚜렷한 족적을 남긴 경우가 의외로 많다. 노력하는 사람 앞에 빈곤이나 불행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남들에 비해 부족한 환경에서 태어났다고 슬퍼할 필요가 없다. 가난은 수족의 고단함이지 결코 성공의 열쇠와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어떤 점에서 가난을 축복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가난하기 때문에 역경을 극복하는 힘이 생기고, 가난의 고통을 알기에 불굴의 의지가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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