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균화/ 서울복지신문 주필, 회장, 교수
정균화/ 서울복지신문 주필, 회장, 교수

최근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새삼 인면수심(人面獸心)이란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여 제자를 상대로 한 교수의 성추행이라든지 지방 자치단체장의 성추문 사건, ‘땅콩 회항 사건’까지 하루도 쉴 틈 없이 '갑질' 사건과 더불어 입에 담지 못할 끔직한 사건이 마음을 심란하게 한다. 신년에는 먼저 우리의 입단속부터 해야 할 판이다.

구시화문(口是禍門)이라고 했던가.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다’라는 뜻으로 전당서(全唐書 )설시편(舌詩篇)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물고기가 입을 잘못 놀려 미끼에 걸리듯, 입을 함부로 놀리는 사람은 그 순간의 잘못한 입으로 화를 자초하는 법이다. 입구(口)자 세 개가 모이면 품(品)’자가 된다. 자고로 입을 잘 단속하는 것이 품격의 기본이다. 인체의 양(陽)은 입에서부터 비롯된다고 하니 인간 만사가 입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의미다. 입은 화(禍)가 들어오는 문(門)이라는 의미이다.

말은 깃털과 같아서 한번 내 뱉으면 주워 담기 힘들다. 말 한마디 잘못으로 이혼을 하고 원수가 되고, 옥고를 치루고 이념의 전쟁까지 하게 된다. 입을 조심하고 혀를 조심하고 말을 삼가라는 것은 인간 세상이 존재하는 한 유구한 진리다. 입단속을 잘못해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긴급복지지원금이라도 받아 밀린 월세 3개월치 90만원 중 한달치라도 내려고 동대문구청을 찾았다가 해결이 용이치 않자 구청사 8층서 뛰어내린 수급대상자의 경우도 한 예가 아닐까 싶다. 사건의 결말이 말해주듯, 실제 한마디의 말이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는 데는 변론의 여지가 없다. 물론 당사자들 간에 오고 간 말 그 이면에는 더 복잡한 사연이 얽혀 있을 수도 있다.

동대문구청 복수의 관계자들의 말처럼 ‘한 시간 뒤쯤 긴급복지지원금이라도 풀어주려 했다’면 그 남자가 왜 그리도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야 했을까. 사전에 그 남자의 지친 마음을 달래주고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더라도 과연 그가 최악의 결정을 했을 것인가. 혹시 말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고 ‘나는 구제 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열패감에 찔림을 당해 극단의 선택을 한 것은 아닐까.

입으로는 ‘복지’를 되풀이하면서도 ‘실체 없는 복지’로 당사자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경우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어느 코미디언의 말처럼 ‘조사하면 다 나올 것’이나 이미 고인이 된 그 남자는 말이 없다. 슬픈 현실 앞에 가슴이 미어지지만 ‘만성복지불감증’의 희생양이 된 고인의 명복을 비는 길 밖에 없다. 다시는 유사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긴급복지지원체계를 정비하고 “내 가족 일처럼 잘 봐달라”는 하소연 밖에 할 수 없는 처지다.

지난 4일 오후, 온라인 SNS에 '백화점 모녀 갑질'이란 동영상과 사연이 화제가 되었다. 또 서울 황학동의 한 대형마트에서도 고객 37살 박모씨가 마트 보안요원과 직원을 폭행한 사건이 알려졌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며 30여분 동안 난동을 부렸고, 이 과정에서 보안요원이 박 씨에게 맞아 피를 흘리기까지 했다. "내가 그럴만한 집안이기 때문에 소리 지르는 거야. VIP 고객한테 XXXX이야, 몇 억 씩 쓴 사람한테?"

사회 각계각층에서 황당한 갑질 사건이 연속적으로 생겨나고 있다. 참으로 씁쓸한 인생이나 그렇다고 남의 탓만을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어느 날 나도 누군가에 갑질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리적으로 권력과 '갑'의 위치에 서면 '을'에게 자기중심적이 되고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심리적 범죄’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주변에 대한 배려와 관심,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가겠다는 책임의식을 가져야겠다. 국민을 상대로 하는 공무원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고, 사회복지를 담당하는 관계자들에게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아니 우리 모두‘을’의 자세로 상대의 입장이 되어 보살피는 마음을 갖는 것은 어떨까. .

보편적 복지의 원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올해엔 무례한 말, 갑질, 폭력행위 등에 대한 엄중한 사법처리와 책임이 따를 것이라는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복지사회의 구성원으로 자신을 성찰하며 ‘구사화문’의 뜻을 되새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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