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 토이앤가이 대표
김대식/ 토이앤가이 대표

[서울복지신문] 정치가들은 서로 원수처럼 으르릉 대다가도 다음날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악수를 하면서 잘 해보자며 카메라를 향해 웃는 모습을 보여준다. 혈기에 가득차 상대방에게 삿대질하면서 고성을 지르는가 싶다가도 돌아서면 금새 화해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대개가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누구든지 용서하고 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입으로는 용서를 하지만 과연 마음으로까지 용서를 했는지는 의문이다.

비교가 좀 그렇지만, 대체로 정치가들보다 훨씬 솔직하고 단순한 이들이 조폭이라는 말이 있다. 영화를 봐도 그런데 그들은 당하면 바로 주먹과 칼로 보복한다. 영화 ‘비열한 거리’에는 이런 조폭의 모습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우리네 보통 사람들은 정치가들처럼 자기기만도 못하고 조폭처럼 피비린내 나는 보복도 못하지만 자기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상처를 준 사람, 배신한 사람은 절대 잊지 못한다. 그 마음속에는 ‘저런 인간은 절대 용서할 수 없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늘 상대의 잘못을 기억하고 그가 자기에게 끼친 해를 떠올리며 고통을 당한다.

이렇게 용서하지 못하면 행복하지도 못하고 암이나 우울증에도 잘 걸린다.

나에게 고통을 준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그 어려운 일을 해야 내가 살아날 수 있다. 그런데 입으로만 하는 용서는 소용이 없고 조건부 용서도 안 된다.

상대방 때문에 내 사업이 망했고, 내 가족이 다쳤고, 내가 상처를 받았다면 어떻게든 그 당한 빚을 갚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마련이다. 그래서 내가 입은 손해인 빚을 스스로 짊어지는 대가 지불이 없이는 절대 용서가 안 된다.

이 마음은 합리적인 생각이나 지성으로는 결코 생길 수 없다.

2차 대전 때 나치수용소에서 가족을 잃은 코리텐붐이라는 여성은 전쟁 후 고난을 겪었던 자기 삶을 간증하고 다니다 어느 날 자기와 악수하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중에서 가족을 죽게 했던 원수를 발견했다.

그녀는 가슴이 떨리고 어찌 해야 할지 몰랐지만 맘속으로 기도하다 그와 악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서가 안 되는 마음이지만 억지로 악수를 한 것이다. 상대는 그녀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눈물을 글썽이며 악수를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녀가 참고 억지로 악수하고 나자 원수를 향해 일어났던 분노가 사라지며 그를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는 코리텐붐처럼 원수가 아니라 조그만 상처를 준 사람도 잘 용서하지 못한다. 그리고 용서를 했다가 그가 또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 자꾸만 용서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반복해서 용서해줘야 하는 사람이 내 주위에 있을 때, 더구나 그가 가족일 때는 용서가 더 어려워진다. 가령 바람피운 배우자를 용서했는데 그가 또 같은 일을 저지른다면 용서고 뭐고 이혼해버리고 싶은 것이 사람이다.

용서란 그만큼 부스러지기 쉬운 것이다. 이 용서를 조건 없고 계속적으로 할 수 있으려면 내 능력과 생각만으로는 안 된다. 코리텐붐처럼 분노를 초월하는 힘을 받아야 가능한 것이다. 그 힘은 나도 용서를 받은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서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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