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머니라고 부르기엔 너무도 건강하고 고운 손용순 씨는 부지런함이 건강비결이라고 말했다
▲ 할머니라고 부르기엔 너무도 건강하고 고운 손용순 씨는 부지런함이 건강비결이라고 말했다

[서울복지신문=장경근 기자] 송용순(96) 할머니는 용산구에 살지만 69년 동안 충무로와 인연을 맺어왔으니 충무로 토박이나 마찬가지다.

송 할머니는 26살이던 1947년 고향인 황해도 해주에서 내려와 중구 충무로3가에 터를 잡았다. 6.25 전쟁과 1.4 후퇴 이후에도 다시 돌아와 69년동안 충무로와 회현동 일대를 지켜왔다. 그래서 그녀의 본적은 제2의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중구 충무로3가 58-12번지다.

"내 본적은 충무로예요. 집에서 잠만 자고 나와 사람도 만나고 일도 하는 곳이죠. 죽을 때나 옮기면 모를까 주소를 왜 옮겨."

송 할머니는 30살이던 1951년 충무로에서 양장점의 문을 열었다. 당시 재정경제부에서 근무하던 공무원 남편을 도와 살림을 꾸리기 위해서다.

당시 50~60년대 내로라하는 시내 번화가 몫 좋은 곳엔 의례히 양장점과 빵집이 자리 잡았다. 유명 연예인들이 즐겨 찾았던 곳이 명동이라면 중·상류층 정숙한 부인들이 주 고객이었던 충무로에 위치한 송 할머니의 양장점은 꽤 인기가 많았다. 주문량이 밀려 밤샘작업을 하기 일쑤였다.

부모의 교육열로 서울 경기여고와 더불어 명문 여성교육기관으로 꼽혔던 공립해주여고를 나와 동경 기예전문학교에서 의류디자인을 전공했으니 당시로 치면 교육수준이 높은 신여성이었다. 타고난 손재주와 스스럼없는 사교성 때문에 입소문을 타고 단골도 많이 생겼다.

"1천원짜리 옷이라도 2천원의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해. 예술작품을 만들어야지."

송 할머니의 경영철학은 바로 그녀의 생활신조이기도 하다. 모든 일은 한번 시작하면 빈틈없이 끝을 봐야하고 내가 먼저 만족해야 한다는 것.

송 할머니가 당시 살림집과 함께 붙어있던 양장점에서 가르치던 종업원만해도 10여명. 그 중에는 앙드레김으로 널리 알려진 김복남씨도 있었다. 얼굴이 유난히 하얗고 수줍음을 많이 타 아직도 기억이 생상하다고 말한다.

아들같이 여겼던 그가 한국을 대표하는 유명 패션디자이너 앙드레김이라는 사실은 작고 소식 이후에 김복남이라는 본명으로 알았다고 한다.

승승장구하던 송 할머니는 1970년 양장점을 접게 된다. 가게에서 일어난 대형 화재로 전신화상을 입어서다.

화상 자국을 안고 지내온 그녀는 피난시 부산에서 국립사범학교에 근무했던 경력을 살려 1980년부터 33년간 야간학교인 중부직업청소년학교의 교장직을 맡게 된 것을 계기로 봉사의 길에 발을 담그게 된다.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 셈이다.

구두닦이, 신문배달 등으로 가계를 돕느라 배움의 기회를 포기했던 당시 불우학생들에게 송 할머니는 헌신적인 학업지도와 생활지도로 적극적인 도움을 준 봉사자로 기억되고 있다. 지금도 스승의 날이 되면 20여명이 넘는 당시 제자들이 감사 인사차 그녀를 찾아온다.

청소년학교에서 봉사에 재미를 느낀 송 할머니는 (사)한국부인회에도 몸을 담아 한국부인회 총본부 부회장과 서울시 여성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며 여성의 사회참여와 취약계층 사회복지, 건전한 가정 육성 등 여성의 자주성과 자립심을 고취시키는데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리고 정신대 할머니들의 말벗이 되어주고, 여성단체와 네트워크를 형성해 농산물 감시 모니터 활동과 우리먹거리 지키기 홍보를 적극 펼치는 등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앞장서 왔다.

이런 열성적인 활동으로 국민포장, 대통령 표창, 제6회 서울시 여성대상 등을 받는 등 대외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봉사에 눈을 뜨면서 송 할머니의 인생관도 바뀌었다. 인생의 가치가 돈이 아닌 인격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돈 많은 집으로 시집가려면 갈 수도 있었겠지만 형편은 넉넉지 않아도 인격을 갖춘 집안에 시집와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있다."

100살을 내다보고 있지만 송 할머니는 현재 한국부인회 총본부 이사 및 서울지부장을 비롯해 고려대학교 여자교우회 자문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중구협의회 위원이자 고문을 맡아 매일같이 충무로3가에 있는 한국부인회 사무실에 출근하는 등 왕성한 사회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부지런함이 바로 송 할머니의 건강 비결이다.

1시간여를 꼬박 남산 일대를 걸어야 하는 중구민 한가족 걷기대회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을 정도다. 여기저기서 불러대는 모임도 많고 할 일도 많다보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에 있을 시간이 없단다.

앞으로 하고 싶은 꿈이 있냐는 물음에 송 할머니는 미소 띤 얼굴로 이렇게 답했다.

"계획도 있고 의욕도 있지만 실천을 하기가 겁나. 기약을 못하는 인생이니 지금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내 성격에 감당을 못해서.”

 

저작권자 © 서울복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