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왕Qwon Sunwang, 가려진 지속-바람과 함께 사라지다.Veiled flux-Gone with the wind,132X162cm, Oil on canvas, 2017
권순왕Qwon Sunwang, 가려진 지속-바람과 함께 사라지다.Veiled flux-Gone with the wind,132X162cm, Oil on canvas, 2017

[서울복지신문] 나는 좌절하고 있었다. 내 작품이 어렵다는 얘기를 몇 번 들은 터였다. 어느 날 저녁 무렵 어떤 사람한테서 문자하나가 왔다. “작가님 작품은 살 수도 있나요?” 난 조금 긴장했다. 내 작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다니. “그런데 어떤 작품인가요?” 반문했다. 그는 내 작품 이미지를 다운받아 놓은 게 있으니 보내겠다고 한다. 바로 이미지 한 장이 날아왔다. 익숙한 내 작품이었다. 그는 내 자료를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작품이 맘에 들었다고 한다. 지금 시간이 괜찮으면 바로 찾아오겠다는 것이다. 차가 막혀 아홉시가 되어서야 그가 도착했다고 전화가 왔다.
그때부터 나의 작품주제 <가려진 지속>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 중에 수년전 작품 내용 중에 독립운동을 했던 의열단, 조선의용대 이야기 등으로 이어졌다. 저기 자작나무처럼 보이는 그림은 무슨 의미로 그렸나요. 주로 추운지역에 서식하는 자작나무를 그린 것입니다. 내가 십자령을 방문했을 때 태항산을 갔을 때 간간이 마주쳤던 자작나무를 재구성한 것이었다.
나는 그림을 어느 정도 그리고 칼로 캔버스를 찔렀다. 이 방법은 <약산 진달래>전을 준비 했을 때도 했던 방법이다. 우연히 마주한 약산 김원봉의 낡은 필름을 보았을 때 나의 폐부를 찔렀던 그의 눈 빛, 영상 속 아련한 과거가 된 지직 거리던 소리와 겹치던 의기에 찬 일성은 항상 무력하게 느꼈던 우리의 근대사를 떠올렸을 때 한 줄기 희망의 빛으로 다가 왔다.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은 자유다. 식민치하에서 살 순 없다고 이 땅을 떠나 이역만리 타향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며 독립운동을 한 무명의 용사들을 그리고 싶었다. 그러나 해방된 조국은 냉전이데올로기의 폭풍 속으로 흡수되어 그들의 고통과 정신조차 파괴하는 시간들이 있었다. 전의식으로 그려진 이미지, 이렇게 만든 이미지의 캔버스를 파괴하는 것은 그들을 파괴해온 현재, 새로운 체제는 그들의 숭고함을 오랫동안 덮어버리려 했다. 그러나 저항의 이면은 소리 없는 숨결로 지속되고 있었다. 겨울을 지나는 나무에 나뭇잎이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 칼로 찢긴 뚫린 공간에 물감을 채우는 것은 그들의 상처를 치유해 보려는 것, 또는 그들의 투쟁의 표상을 눈물의 기표로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캔버스 뒷면은 ‘소리 없는 아우성’의 흔적들이다.
“저기 개울은 조선의용대가 멱을 감던 곳입니다.” 그들은 멱을 감은 후 각자 흩어져 앉아 담배를 꺼내 물었다. 하얗게 피어 흩어지는 연기에 고향의 그리움은 더해갔다. 언제 독립은 오는가. 그것은 그리움의 탄식이다. 팔로군과 함께 했던 조선의용대 그들의 새로운 조국을 만들자는 의지는 점점 약화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일본군의 참빗 작전으로 윤세주와 진광화가 전사했다. 그리고 무명의 용사들은 자작나무 숲으로 사라져 갔다.
나의 이야기는 작은 붉은 색 그림으로 이어졌다. 그가 사진으로 보내온 그림 중 하나다. 저것은 무슨 내용인가요. 그가 물었다. 나의 가려진 지속 연작 중 하납니다. 여름 낮에 멱을 감던 곳의 석양풍경입니다. 이 작품에 관심을 보였다. 주먹밥과 감자 한 조각을 먹으며 석양을 바라본 장면인데 작은 나무들이 앙상하게 양쪽으로 배치된 그림이다. 나뭇잎은 아직 잎이 돋아 있다. 지난 해 겨울도 잘도 버티어 주었다. 그런데 독립군들은 그런 나날들을 어떻게 견뎠을까요. 그것은 희망입니다. 독립에 대한 끈을 놓지 않은 간절함 말입니다. 그들은 결코 사라진 게 아닙니다. 단지 가려졌을 뿐이죠.
지금도 자유를 속박당한 우리는 자본의 굴레에서 독립을 외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가려진 지속’입니다. 그는 이 붉은 빛 가득한 작은 그림을 갖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가려진 지속은 어려우니 희망의 미래적인 메시지가 있는 부제를 하나 붙이면 어떤가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것도 좋은 생각이군요. <가려진 지속- 내일의 태양> 어떻습니까? 그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럼 ‘내일의 태양‘을 싣고 가세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 오하라의 마지막장면이 생각납니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는 거야 !”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초빙교수 권 순 왕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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