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균화 주필, 명예회장, 교수
정균화 주필, 명예회장, 교수

[서울복지신문] 요즘 청소년들의 싸가지가 결핍된 이유는 부모가 많은 것을 해주지 못해서 생긴 게 아니라 너무 많이 해줘서 생긴 것이다. ‘부족’을 알아야 ‘풍족’(豐足)이라는 개념을 아는데, 풍족만 알고 있으니 부족도 모르고 진짜 풍족조차 모른다.

해결의 실마리는 부모에게 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부모의 권위를 회복하고 원칙과 질서를 확립하면 자녀의 싸가지가 움튼다는 것이다. ‘부족’을 알아야 ‘풍족’이라는 개념을 아는데, 풍족만 알고 있으니 부족도 모르고 진짜 풍족 조차 모르는 아이가 되고 만다. 그럼 일단, 뭐든 줄여야할까? 일정 기간은 그럴수도 있을 것이다. 짐승도 탈이 나면 일단 먹지 않는다. 먹지 않고 속을 비워서 스스로를 치료하는 것이다. 

사람만이 너무 많이 먹고 너무 많이 투자하고 너무 많이 가져서 도리어 죽는 어리석은 인생의 주인공이 된다. 다 큰 자녀로 인해 고통 받는 부모들은 대부분 과잉으로 인한 고통을 겪고 있는 셈이다. 

사랑을 주더라도 원칙이 있어야 한다. 부모의 원리 원칙은 건물의 기초와 같다. 사람에겐 척추와 같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기초가 부실하면 아무리 인테리어를 잘해도 무너질 수밖에 없고 척추가 부실하면 아무리 튼튼한 근육을 가졌다 할지라도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그러면 아이들이 반발하지 않을까요?”라고 걱정할 수도 있다. 당연히 반발할 수 있다. 그래도 너무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 반발도 일종의 의사표현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반발이 논리정연하다면 좋은 의견이 되기도 한다. 그럴 때는 아이들과 조율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다.  또 사람은 정해진 규칙, 그것도 본인이 스스로 말한 규칙은 더 잘 따르게 되어 있다.  거기에 규칙을 지켰을 때의 보상과 규칙을 지키지 않았을 때의 벌에 대한 기준을 피차 명시해 놓으면 더 명확해진다.

”뜨거운 사랑만으로는 안 됩니다. 적절한 시기가 되면 차가운 사랑도 해야 합니다. 차가운 사랑(tough love)이란 어떤 행동을 교정할 때 방향과 지침을 주는 사랑이지요." <다 큰 자녀 싸가지 코칭, 著者 이병준>에서 말하고 있다.

‘싸가지’는 정확히 무슨 의미일까? ‘싸가지’는 엄연한 보통 명사다. ‘싹수’의 강원도 또는 전남 지방의 방언으로, ‘봄에 처음 틔우는 새싹’을 지칭한다. ‘싹아지’가 튼실하면 그해는 풍년인 것처럼 싸가지 있는 사람이란 자신만의 독특한 재능과 창조성을 꽃피울 기본적인 태도(attitude), 성품, 예의를 갖춘 사람으로서 자신과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제대로 된 사람이다.

우리는 일 년에 몇 번씩 싸가지 없는 재벌 자녀들의 甲질 논란에 분노하고 있다. 지금이 어떤 시대이며 어떤 사회인가? 그들은 그들만의 특권의식에서 길들여지고 길러온 업보인가, 횡포인가? ‘내가 부리는 사람’, ‘돈이면 된다.’는 왜곡된 특권의식, 천민자본주의가 몸에 밴 이들 일부일가의 연이은 그릇된 처신에 서민들은 또다시 분노하고 현실을 탄식한다.

최근 몇몇 그룹의 3·4세들이 다 괴물로 비춰지고 그들의 몰상식한 행보에 甲질이 폭로로 이어지고 있다. 사후 약방문식으로 사과와 해명을 내놓고는 슬그머니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그들이 현업에 복귀했다. 아마도 이들 자녀들은 유년시절부터 어린왕자와 공주처럼 안하무인(眼下無人)식 대접을 받다보니 甲질 자체가 그들의 방위권이며 결국 내 마음대로 사람에게 홀대(忽待)해도 된다는 아주 나쁜 생활방식(삿대질, 고성, 폭언, 폭행)이 자리 잡은 듯하다. 그동안 여러 차례 운전기사 폭행, 폭언사건, 하청업체 용역회사직원폭행, 위임변호사에게까지 甲질, 술집 종업원 폭행으로 이어졌다.

거기에 이젠 재벌3세의 이상한 공주들까지 가세해서 땅콩 던지고, 회항시키고, 음료수병 던지고, 얼굴에 물 뿌리고 재단 총장에게도 甲질을 하였으니 말이다. 회사 내 중역에게까지 폭언하며 헤아릴 수 없는 정도이다. 이들과 부모들에게 또다시 묻고 싶다. 무임승차로 경영승계에 앞세우기 전에 먼저 인격과 인성(人性)교육의 바탕인 가정교육을 제대로 해왔냐는 것이다. 과거재벌1,2세의 겸손과 배려를 잊어버리고 삐뚤어진 특권의식만 전수 받은 뜻 하니 말이다.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이듯 더 낮은 자세로 선대가 이루어놓은 기업을 겸손한 자세로 이어나가야 한다. 이들 ‘싹수 노란’자녀들의 나쁜 인성교육은 기업의 백년대개를 이을 수 없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부모로서 자녀에게 물려주는 최선의 유산은 돈보다 공감과 배려하는 삶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결국 이번 대한항공사례도 자녀에게 부모의 가정교육.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새삼 돌아보게한다. ”돈보다 인간관계가 더 소중한 것임을 알게 하라.“<로스차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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