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왕 Qwon Sunwang, 투루true60.7X100cm, 차유리 오브제, 성경책, 2013
권순왕 Qwon Sunwang, 투루true60.7X100cm, 차유리 오브제, 성경책, 2013

[서울복지신문] 내가 먹은 음식의 과거를 아는 것은 작은 나의 역사를 아는 것이다. 어제의 음식은 나의 오늘이 된다. 그것들을 문자로 기록하고 기억을 색으로써 일회용 종이컵에 침전시킨다. 일회용 종이컵이 음료수를 먹고 버려지는 존재라면 종이컵은 순간 사라져가는 시간의 이미지 같다. 이렇게 버려지는 사물을 시간의 오브제처럼 생각하는 순간이 있었다. 시간은 항상 다가와 새롭게 과거로 되어버린다. 그런 시간을 잠시 잡을 수는 없을까? 시간은 우리의 몸과 함께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있음으로 존재한다. 시간은 사라지며 존재하고 종이컵은 버려지면서 없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들과 먹었던 음식을 종이컵에 기록하고 일회성의 종이컵을 작품에 쓰고 있는 지금 나는 왜 지나간 사소한 시간들을 시각화하려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종이컵 이미지를 작품에 끌어들이기 시작한 것은 2008년<시스템의 빛>이라는 영상물을 만들 때였다. 광화문에서의 촛불시위 때도 많이 사용한 종이컵은 언제 부턴가 우리에게 마시는 행위뿐만 아니라 주변에 항상 함께하는 일회성의 비어진 물질이다.

종이컵은 촛불이 꺼지지 않게 하는 바람막이다. 시위가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것일까. 아니면 일회적으로 소비되는 하나의 가볍고도 보잘것없는 개인의 존재를 찾고자 함이었을까. 나는 종이컵에 글을 쓰고 색을 칠한 뒤 종이컵을 해체시켰다.

우리는 식당에서나 커피숍에서나 흔하게 버려지는 일회용 컵들과 만난다. 이러한 일회용 종이컵에 나와 우리의 지나가는 짧은 과거를 기록해 보기로 했다. 우리의 시간은 일회적으로 지나가 버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지나간 시간을 다시 불러내어 어제의 시간을 지연시키고자 한다.

음식을 기록하는 작업에 대한 관심은 아이의 어린이집 일기장을 보면서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무엇을 먹고 놀았는지 선생님이 써준 이 기록을 통해 볼 수 있었다. 내가 볼 수 없었던 시간동안 아이는 이 기록에 의해서 존재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물질을 먹은 기록의 존재일지 모른다.

“당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보라.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브리아 샤바랭)

이 프로젝트는 연속적인 시간 속에서 망각되는 우리의 기억을 살리는 작업이다. 어제 내가 먹었던 음식을 색으로 기억하고 그 시간을 떠올려 본다. 내가 당신에게 어제 먹었던 음식을 말해 보라고 한다면 그때의 공간과 그 속의 자신을 떠올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평범한 일상이기 때문에 우리는 불과 어제 먹었던 음식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이 작업은 속도를 늦추는 일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나누는 기억 속 색채의 대화는 어제를 바라보게 하는 일이다. 음식점에서 무료로 제공되거나 자판기에서 한번 마시고 버려지는 종이컵을 보라. 일회용 종이컵은 순간순간 소비되는 일상 속 시간이다.

이 작업은 종이컵 아랫부분에 음식물을 글과 색으로 기록하고 깨진 자동차 유리를 동그란 원형에 붙이는 것이다. 이 자동차 유리는 현대성을 나타낸다. 이렇게 잘게 부서진 유리는 속도와 바람을 막는 자동차의 포장재로서 파편의 치유적 접합이다.

컵 바닥면의 바깥쪽, 즉 당신이 먹는 컵의 밑 부분을 바라본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 당신이 먹은 것들을 기억하여 쓰라고 말한다. 이런 기억의 색채들은 하나의 사물이 된다. 해체되어 만들어진 오브제Objects는 ‘기억하라’는 화자의 수직성이 제거되어 수평적으로 배열하는 관계의 몽타주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와의 대화와 타인과의 대화 속에서 얻는 수직성에서 수평성을 얻어 내려하는 것이다. 결국 컵의 윗부분 거의 전부를 제거하면서 얻어낸 오브제는 그 받침을 이루었던 밑바닥이다. 이렇게 해체되어 동그랗게 칠해진 유리로 마무리된 오브제는 텍스트의 추상적 언어로 이행된다.

오늘날 이렇게 지나간 시간과 사소하게 먹은 음식의 정보, 사라질 운명의 소멸되어가는 종이컵, 먹는다는 행위의 실존적 인간은 비물질적인 기억과 함께 버려지는 종이컵 더미처럼 황폐화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한국판화연구회 회장 권 순 왕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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