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왕QwonSunWang, Red Ⅱ, video 1min, cloths, Beam projection, 2014
권순왕QwonSunWang, Red Ⅱ, video 1min, cloths, Beam projection, 2014

[서울복지신문] 어릴 적 동네에는 연을 잘 만드는 솜씨 좋은 형이 있었다. 한지를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여러 번 접어서 가위로 구멍을 낸다. 직사각형의 한지 양쪽에 작은 원형을 반복하여 양쪽에 세로로 그려 넣었다. 그리고 원형 바탕에는 빨강색 물감으로 길게 색칠을 하였다. 세로로 양쪽에 빨갛게 칠해진 바탕에 하얀 원형들이 여러 개 있는 원형 패턴의 그림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빅토르 바자렐리Victor Vasarely 의 기하도형 그림과 비슷하다. 한지에 구멍을 내고, 대나무살로 뼈대를 만들어 붙이고, 한지 중간 부분 양쪽은 칼로 자르고, 불룩하게 연의 모양을 만들기 위해 연 가운데에 밥그릇을 엎어놓고 대나무살에 붙은 허리중간은 칼로 베어 자르고 곧바로 한지를 밥풀로 이어붙이는 장면이 생각난다. 밥풀로 붙인 부분을 빨리 말리기 위해서 성냥불로 말렸다. 나는 후일 그걸 따라하다가 몇 개 연을 만들기도 전에 불태워 먹었다.

연을 날리기 위해서는 연줄을 양쪽에 같은 길이로 매어 균형을 잘 맞춰야 한다. 연을 조르다시피 해서 선물로 받은 나는 신이 나서 연을 날리기 시작했다. 가만히 앉아서 멀리 있는 연을 보면서 있었는데 손에서 당겨지는 팽팽한 연줄과의 긴장은 아직도 남아있는 듯하다. 얼레를 조금씩 풀어서 공중에 높이 올라가는 연은 하나의 당당한 전사였다.

한참 연을 날리면서 줄을 감고 풀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줄이 툭! 끊어져 버렸다. 그 팽팽하던 줄에 힘이 없어지고 당당하게 서있던 그 방패는 공중에서 가로 세로로 서서히 몇 번을 반복하여 뒤집히며 떠나간다. 나는 곧바로 뛰어나가 언덕에서 멀어져가는 연을 동동 구르며 안타깝게 바라보다가 결국 그 연을 따라가는 걸 포기 버렸다. 연은 이미 저쪽 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 광경은 그 후 가끔씩 생각나는 잔상의 메아리가 되었다.

위 작품은 2005년도에 시작되었다. 오래된 기억의 시간을 표현해보고 싶었는데 연을 날리던 때를 떠올리게 된 것이다. 한지 가운데에 구멍을 낸 종이들을 공중에 걸어 연의 시간들을 표현하고 싶었다. 공중에 떠있는 연들의 연속된 잔상들은 시간들의 겹과 같다. 방패연을 만들 때를 기억해보자. 세로로 된 직사각형의 모양에 가운데 비어있는 공간은 수없는 시간의 비워짐이다. 그 한가운데는 비워져 있다. 바람이 지나가는 길이다. 비워지며 존재하는 이치는 동양철학의 미학이다. 비워짐으로 존재하는 방패연은 여백의 정수다. 그가 날기 위해서는 잘려진 허리를 균형 있게 붙여야하고 연줄의 길이는 평등해야 한다. 내가 연과 교감하기 위해서는 연줄을 잡고 바람의 세기와 줄을 잡고 있는 그 지루함과 마주해야 한다.

위 작품은 한지에 구멍을 뚫어 낚시 바늘로 거는 행위를 통해 무한한 시간 속 질량들을 가볍게 접근해 보고자 했다. 그 각각의 파편화된 시간 속 사건들은 다른 공간 속, 다른 함량의 이야기를 갖고 있음을 뜻한다. 비어있는 공간에 이미지를 투사시킬 때, 그 한장 한장 찢겨진 종이 틈새로 보이는 이미지는 시간과 시간 속 연속이며 단절이다. 결국 현재의 이미지는 어느 일부분만 전사된다는 의미에서 하나하나의 개체는 그들의 의지대로 할 수 없는, 무중력의 공중에 매달린 부유하는 가벼운 실체라고 할 수 있다. <Red Ⅱ>의 투사된 이미지는 빨간색으로 된 사물들을 이어 붙여 만든 영상이다. 색깔에는 원래 특정한 의미가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표현해 본 것이다.

나는 오늘날 오랜 동안 지배했던 우리의 고정된 색깔 논리의 의식을 비워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와 나의 고정된 색과 의식은 비워냄의 공간을 만들 수 없다. 서로가 바라보고 관계의 여백을 만들려면 멀어진 둘의 거리를 다양성의 색으로 붙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에 대한 침묵과 치유의 성찰이 필요하다. 남과 북의 잘려진 현실을 방패연에 비유해 보자. 칼로 베어진 양쪽진영의 체제를 밥풀로 붙여보자. 큰 줄기의 민족을 붙이고자하는 정치 시스템은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것은 남쪽과 북쪽 민의의 힘이다. 가장 힘이 없어 보이는 밥알 하나는 민족의 연을 만든다. 그것은 생육이며 번성의 공간을 만든다. 그 가볍지만 아름다운 한지를 지탱해 주는 것은 대나무로 쪼개어 만든 살이다. 그것은 뼈이며 우리 민족을 이어주는 대나무 같이 바람을 내어주는 선비 정신이다. 냉전과 이데올로기의 시간들은 점점 작아지고 있다. 연이 잘 날 수 있는 조건인 평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제 화해의 공간을 비워놓아야 한다. 그 연을 바르게 날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가운데를 비우고 양쪽을 바르고 균형 있게 매어야 한다. 그 방패연의 공간에 세계의 바람과 영겁의 시간이 있다. 그것은 과거 영광의 역사이며 과거의 아픔과 치유의 현재이며 그것이 희망의 미래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초빙교수 권 순 왕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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