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균화/ 주필, 명예회장, 교수
정균화/ 주필, 명예회장, 교수

[서울복지신문] 행복하게 사는 것만큼 행복하게 죽음을 준비해야 하며, 그것을 방해하는 공포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치매’일 것이다.

최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내 65세 이상 노인 인구 중 치매환자는 72만5,000명이다. 2016년 68만5,000명에서 8개월 새 6%가 늘었다. 치매환자 증가율을 앞으로도 가파르게 늘어 오는 2024년 100만 명을 넘어선 뒤 2050년에는 271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치매환자가 증가하면서 사회적 비용도 커지고 있다. 의료비와 요양비, 생산성 손실 등 간접비까지 포함한 치매환자 1인당 관리비용은 2015년 기준 2033만 원에 달했다. 이를 전체 치매 환자에게 드는 비용으로 환산하면 국내총생산(GDP)의 0.9%가량인 13조2000억 원에 이른다. ‘문재인’ 정부는 치매 국가 책임제를 2018년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치매 관리 인프라 확충 △환자 및 가족의 경제부담 완화 △경증 환자 등 관리대상 확대 등의 정책을 내놓았다. 이를 통해 예방부터 관리, 처방, 돌봄 등 전반적인 치매관리시스템을 수립한다는 방침이다.

“친구여, 이건 해피 엔딩이다. 우리 모두 바라지만 가질 수 없는……”때때로 마누라도 못 알아보는 알츠하이머 남편과 진통제 없인 하루도 못 버티는 말기 암 아내가 캠핑카에 올랐다. 66번 국도를 따라 미 대륙을 횡단하는 3945킬로미터, 최후의 여정.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맏딸 ‘신디’는 (강아지한테나 할 법한 어투로) 말했다. “안 돼!”(주치의라도 되는 듯 행세하지만 실은 우리에게 바늘을 들이댄 수많은 의사 중 하나일 뿐인) 닥터 ‘토마셰프스키’도 말했다. “엘렌, 종류를 불문하고, 어떤 여행도 해서는 안 된다고 강력히, 강력히 권고하는 바입니다.”

안 될 건 또 뭔데? 물론 현명한 생각이 아니라는 건 안다. 하지만 말기 암 환자와 중증 알츠하이머에게 지금 현명한 생각을 요구하는 건가? 누가 뭐래도 존은 눈을 감고도 운전할 수 있는 베테랑이고, 난 지도의 여신이다. 그러니 우리가 우리 길을 가게 내버려두길. 가끔씩 기억을 잃는 순간 그가 “집이야?”라고 반복해 묻는 건 가슴 아프지만 그래도 괜찮다. 기억은 내가 간직하고 있으니까… 마이클 저두리언의 소설 ‘레저 시커’에서 죽음을 앞둔 노부부의 유쾌하고 코끝 찡한 마지막 여행 이야기가 펼쳐진다.

작가가 애틋한 시선으로 그려내는 이들의 마지막 여행은 부모세대의 추억팔이도 아니고 절망에 찬 신세 한탄과는 더욱 거리가 멀다. 반생을 같이한 캠핑카와 함께 그들은 매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새로운 고장과 만나고 엄마아빠로 불렸던 노인들이 아닌 진짜 여자와 남자로서 존재했다. 엘라와 존은 60여 년을 함께해온 부부다. 젊었을 적, 모두가 그러하듯 허리띠 졸라매고 알뜰살뜰 살림을 꾸리며 두 아이를 길러낸 이들은 이제 각각 말기 암과 중증의 알츠하이머에 걸려 자식들에게 걱정을 한 아름씩 안기는 80대 노부부가 되었다.

의사의 권유와 자식들의 성화에 못 이겨 무의미한 치료를 계속하던 두 사람은 어느 날 약과 주사로 점철된 고달픈 일상에 반기를 들고 캠핑카 ‘레저 시커’에 올라 둘만의 여행을 떠난다. 나고 자란 미시간州 디트로이트를 떠나 그들이 향해 가는 곳은 66번국도. 1920년대 개통된 후 수십 년간 산업의 핏줄 역할을 해왔으나 오늘날 추억을 더듬을 때나 찾게 된 그 옛길은 대공황과 전쟁을 이겨내며 오늘날의 미국을 세웠지만 이제는 존과 엘라처럼 젊은 세대의 짐이 되어버린 구세대의 상징 같다. 아주 가끔 제정신이 돌아오는 운전은 기가 막히게 하는 존과 약물중독자 앨라는 그들의 마지막 여행지인 디즈니랜드로 향한다.

'길 위에서'그들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이제는 쇠락해진 오래전에 보았던 것들을 다시 만나기도 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간다. 사람들은 누구나 '시한부 인생'을 산다. 인생의 마지막을 타인의 손에 맡기지 않겠다고 결심한 노부부는 의사와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들만의 여행을 떠났고 같이 차안에서 배기가스를 유입시켜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소설에 이어 휴머니즘으로 가득한 드라마 영화 ‘레저 시커’에서 리얼하게 보여준다.

치매는 죽음이란 화두처럼 삶과 가까이 있으면서도 음지로 밀어두는 속성이 있다. 우리 모두 아름다운 생의 마침표를 치매의 늪에서 허우적거린다면 정말 끔찍한 재앙이 될 수 있다. 이제라도 선진국처럼 치매 관리 시스템 수립을 기대하며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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