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균화/ 주필, 명예회장, 교수
정균화/ 주필, 명예회장, 교수

[서울복지싲문] 지금 우리 사회에서 대두되고 있는 ‘다문화’ 가정의 문제와, 사회에 대한 불신으로 만연한 패배주의를 겪고 있는 우리 청년들에게도 용기를 주는 뜨거운 삶의 스토리이다. 새삼 美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의 취임사가 떠오른다. “60여 년 전 같았으면 레스토랑에서 식사도 제대로 못했을 아버지를 둔 한 남자가 지금 여러분 앞에 서서 선서를 하게 되었습니다”라는 말로 과거 인종분리 정책으로 백인들이 가는 레스토랑에 출입조차 할 수 없었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이제 미국에 진정한 변화가 왔음을 선포했었다.

어느 날인가는 교회에서 돌아오다가 하느님이 흑인인지 백인인지 물어보았다.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오, 얘야……. 하느님은 흑인이 아니란다. 백인도 아니셔. 하느님은 영(靈)이시지.” “그럼 흑인을 더 좋아하세요, 아니면 백인을 더 좋아하세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시지. 하느님은 영이시니까.” “영이 뭔데요?” “영은 영이지.” “하느님의 영은 무슨 색이에요?” “아무색도 아니야.” 엄마가 말했다. “하느님은 물빛이시지. 물은 아무 색도 없잖아.”어렸을 때 난 어머니가 어디 출신이고 어떻게 태어났는지 궁금한 적이 많았다. 어디 출신이냐고 물어보면 어머니는 “신이 날 만드셨지.”라며 말을 돌렸다. 백인이냐고 하면 “아니, 피부색이 옅은 편이지.”라며 또 말을 돌렸다.

흑인 아들이 백인 어머니에게 바치는 ‘컬러 오브 워터, 저자 제임스 맥브라이드’에서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버지와 폴란드 계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재즈 뮤지션이자 작가인 저자가, 어머니와 가족에 관해서 쓴 에세이다. 모든 차별과 편견에 당당하게 맞서 자신만의 삶을 완성한 백인 어머니 '루스'와 흑인 아들 '제임스'의 감동적 이야기를 담아냈다. 인종적 정체성을 끝없이 고민한 저자의 치열한 자아 찾기도 따라간다. 피부색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자신의 가치를 깨달아 스스로 인간으로서의 자부심을 갖도록 인도했다.

그의 어머니 루스 맥브라이드 조던은 1941년 4월 1일 폴란드의 정통파 유대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1943년 가족과 함께 나치스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왔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하고, 숨 막힐 듯 억압적인 유대교의 교리를 강요하며 성적 학대와 노동 착취를 일삼는 랍비 아버지의 이중적인 태도에 질린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도망치듯 집에서 뛰쳐나와 과거와 단절하고 뉴욕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녀에게 이러한 결정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내가 살기 위해, 내 나머지가 살기 위해 죽어야” 했던 생존의 문제였다. 얼마 후 그녀는 뉴욕 할렘에서 첫 번째 흑인 남편인 앤드루 맥브라이드를 만나 결혼한다.

그 당시는 '남부에선 흑인 남자가 백인 여자를 단지 쳐다본다는 이유로 죽이는 일'이 공공연하게 일어나던 시절이었다. 생존을 위해 과거에서 도망쳐온 그녀는 흑인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또다시 흑백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처지가 된다. 남편이 흑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쪽에선 흑인들에게 뺨을 맞고, 다른 한쪽에선 백인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는 와중에도 루스는 자신이 선택한 삶을 단단하게 지켜나간다. 하지만 1957년 갑작스럽게 남편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다시 흑인 남성 헌터 조던과 결혼하지만 그 또한 1972년 사망한다. 그 후 루스는 홀로 열두 명의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유리공장을 다니고, 교회 총무로 일하는 한편 밤에는 은행의 타이피스트로 밤낮 없이 일하며 자신의 가족을 위해 온갖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루스의 열두 명의 흑인 자녀 중 여덟째로 태어난 저자는 제일 잘생기지도, 제일 어리지도, 그렇다고 제일 똑똑하지도 못한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묻어가는'존재였다. 항상 가난과 굶주림 속에서 생활하던 그에게 피부색과 관련한 정체성 문제는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그는 우리 집에서 인종문제는 달의 인력과도 같았다. 그것은 강을 흐르게 하고 바다를 부풀리며 파도를 일으켰지만 다루기 어렵고 길들일 수 없고 논의할 수도 없는 암묵적인 힘이었고 따라서 완전히 무시되어야 했다. 루스와 그의 가족이 보여준 그들의 ‘위대한 삶’은 경의로 왔다.

“다시는 아름다운 나라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넬슨 만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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