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십자 봉사원에게 안겨 환하게 웃는 호진이
적십자 봉사원에게 안겨 환하게 웃는 호진이

[서울복지신문=우미자 기자] 두 아이를 책임지고 있는 순영 씨(만 38세 가명)는 아이들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큰 딸에게도 작은 아들에게도 좋은 엄마가 되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자꾸만 하게 된다. “제 아이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호진이도 좋은 환경에서 필요한 치료를 충분히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연신 돌아다니는 아들을 쳐다보며 순영 씨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 가정폭력·장애가 있는 아이·편치 않은 몸... 어렵게 지내온 많은 날들

순영 씨는 아들 호진(만 6세/가명)이를 아주 어렵게 얻었다. 지독한 난산으로 혈압이 150까지 올라가고, 체온이 40도까지 올라가는 등 생사를 넘나들었다. 다행히 죽을 고비를 넘기고 호진이를 품에 안았지만, 결국 한 쪽 난소를 제거해야 했다.

첫 번째 결혼을 실패한 후 딸과 단 둘이 생활을 이어가던 순영 씨는 셋이서 단란하게 살아보자던 사람을 만나 새 가정을 꾸렸다. 호진이를 임신하게 되면서 가족이 더 돈독해지기를 기대했으나 재혼한 남편은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다정한 관심이 의처증으로 변했고, 곧 폭력으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화를 못 참아서 그랬나보다 하고 이해하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점점 횟수가 늘어나더라고요. 어느 날 문득 ‘이러다가 딸아이한테까지 손을 대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죠.” 자신에게 향하는 폭력이 혹시 큰 딸에게 옮겨갈까 걱정된 순영 씨는 호진이가 100일이 되었을 무렵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왔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기에 호진이는 순영 씨의 성을 따르게 됐다.

올 해 7살이 된 호진이는 4살 무렵까지 말을 하지 않았다. 병원에 데려갔더니 지적장애에 주의력 결핍 및 과잉 행동 장애(ADHD), 언어발달장애가 있다고 했다. 설상가상 순영 씨는 퇴행성관절염으로 수술만 4번 받았다. 움직임이 불편한 순영 씨가 중학생인 큰 딸과 많은 관심이 필요한 호진이를 혼자 돌보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큰 딸은 친정 부모님께 맡길 수밖에 없었다. “저도 몸이 힘든데다가 호진이 치료에 따라다녀야 하니 일도 그만두어야 했어요. 치료를 중단할 수는 없고, 큰 아이에게 신경 써주지 못하는 것도 미안하고 그러다 보니 우울증이 오더라고요. 결국 큰 아이를 친정 부모님께서 맡아주시기로 했어요.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는데, 친구들이 다 그쪽에 있어서 졸업할 때까진 할머니 할아버지랑 지내겠다고 하더라고요”

호진이는 현재 언어치료, 놀이치료, 물리치료, 미술치료를 받고 있다. 언어치료의 경우 국가에서 바우처가 나와 부담을 덜 수 있지만, 나머지는 자비로 부담하고 있다. 수급비를 받아 월세를 제하고는 모두 치료에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 내년이면 호진이도 초등학교에 가야하는데 아직 엄마, 맘마 정도밖에 말을 하지 못해요. 공격성도 종종 보이고요. 특수학교에 보내려고 알아보니 발달장애 검사를 따로 해야 하더라고요. 비용이 걱정돼 선뜻 검사하러 가지 못하고 있어요”

◇ 작은 관심과 손길에 다시 가져보는 희망

순영 씨는 2017년부터 ‘희망풍차 프로그램’을 통해 적십자 봉사원과 결연을 맺고 있다. 대한적십자사봉사회 양천지구협의회 소속 봉사원이 매달 순영 씨에게 필요한 물품을 확인해 가져다주고 있다. “생활비의 거의 대부분을 호진이 치료비로 사용하고 있어요. 저도 건강이 좋은 상태가 아닌데다가 얼마 전에는 달려 나가는 호진이를 잡으러 가다가 넘어져 다리 십자인대가 파열됐어요. 일을 하기 어려우니 수급비 외에는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고요. 그래서 적십자에서 봉사원님이 가져다주시는 물품이 참 소중하고, 감사해요”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낯을 많이 가리고 공격성을 보인다는 호진이는 적십자 봉사원을 보자 달려가 안기고 애교를 부렸다. “봉사원님이 자주 찾아오셔서 예뻐해 주시니까 호진이도 봉사원님을 많이 좋아해요. 저도 호진이 병원 갈 때 말고는 사람을 만날 일이 거의 없는데, 봉사원님이 이런저런 이야기도 들어주시고 위로도 해 주셔서 도움이 참 많이 돼요”

적십자 봉사원의 정기적인 방문 덕분에 우울증도 많이 좋아졌다는 순영 씨는 요즘 호진이의 치료를 위해 방문한 병원에서 호진이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의 부모님들과 만나 고충을 나누기도 한다고 한다. “예전 같으면 말을 걸 생각도 못 했을 거예요. 봉사원님이랑 대화를 나누다보니 그냥 그 자체로 위안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같은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대한적십자사는 ‘희망풍차 프로그램’을 통해 4대 취약계층 △홀몸어르신 △아동‧청소년 가정 △이주민 가정 △기타 위기가정을 대상으로 각 가정별로 생계‧주거‧의료‧교육 등 맞춤형 통합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순영 씨 역시 ‘희망풍차 프로그램’을 통해 적십자 봉사원과 결연을 맺고 물품 지원 및 결연 봉사원을 통한 정서 지원 서비스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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