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훈 서울사회복지협의회장
김현훈 서울사회복지협의회장

[서울복지신문] 자신의 행동이 논리적으로 납득가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에게도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타인과의 관계에서 역시 이런 성향이 크게 부각 됩니다. 예를 들면 조금이라도 무책임한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이후에는 그를 신용하지 않고 무슨 말을 해도 무책임한 부분을 정정하지 않는 한 인정하려 하지 않는 자세를 취하게 되죠. 하지만 윗사람에게는 예외입니다. 그들에게는 완벽한 경어를 구사하고, 보고는 한 구절도 빼먹지 않으며 어떠한 의문점도 남기지 않기 위해 애를 씁니다.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 되려고 매사 분주한 것이죠. 하지만 이렇게 꼼꼼한 사람은 훗날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한 사람의 예를 들겠습니다. 

E씨. 72세. 지금은 치매 노인입니다. 그는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전쟁 중에는 육군 중사로 근무한 이력이 있으며 키가 크고 영화배우를 해도 될 정도의 외모를 가진 멋진 남자였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대기업 총무부에 입사해 중역을 거쳐 정년기를 맞이했는데, 사내에서도 침착하고 꼼꼼한 성격은 소문이 날 정도였다고 합니다.

어느 날 E씨가 근무하던 회사의 사옥 이전이 있었습니다. 당시 총무과장이었던 그는 우선 총무과 인원수를 선발하고 지휘했다고 합니다. 옮겨가는 빌딩의 도면을 직원이 가져오면 이를 정확한지 아닌지 확인하느라 시간을 쓰고 하나하나의 장점, 단점을 비교 검토한 후 노트에 기입 하는 방식으로 꼼꼼하게 일을 진행했습니다.

보다 못한 동료 직원 중 한 사람이 “설마 그 빌딩 사람이 준 도면인데 틀릴 리가 있을까?”라고 묻자 그는 격분하며 “그렇게 무책임한 언행을 하니 자넨 출세가 늦어지는 거야”라고 쏘아붙였습니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은 지나치게 꼼꼼한 그의 성격에 지쳐서 의욕마저 잃게 되었습니다. 관계 회복의 해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랬던 그였는데, 직속 상사의 말 한마디에 사건은 너무 쉽게 해결됐습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잖아”라는 상사의 말에 E씨는 군대에 있을 때처럼 직립 부동의 자세로 “예, 알겠습니다. 충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감격하는 얼굴로 대답했다고 합니다. 순간 주변에 있던 동료들의 표정은 안 봐도 알만하지 않을까요?

꼼꼼함은 좋은 성향입니다. 하지만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과정이 도에 지나치면 강박에 의한 집착이 아닌지 의심해보아야 합니다. 적절한 의심은 문제가 발생하는 비율을 현저히 줄여줍니다. 그러나 매사, 모든 관계를 대상으로 내 생각과 다르고 논리적이지 못하다고 ‘마치 부족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메긴다면 결국 그 화살은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됩니다.

어느덧 우리 사회는 ‘융통성 없는’ 사람에게 가혹해졌습니다. ‘꼰대’라는 표현을 쓰며 멀리하려고 합니다 천천히 꼼꼼하게 따져보자고 항변해도 세상은 쏜살같이 빠르고 이를 이해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듭니다. 급변하는 주변 상황 속에서 고립될 것이 뻔합니다. 그럼 어떻게 되겠습니까?

혹시 E씨와 같은 성향이 의심되는 분이 계신다면 자기도 모르게 치매의 어둔 세력이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 조금 여유를 부리며 삽시다. 나 자신을 격려하고 타인에게 관대하며 주변과 하모니를 맞추어 가려고 노력합시다. 격려와 화합으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룰 때 평화는 찾아오고 또한 내면의 평안도 자리잡게 됩니다. 강박관념에 의한 꼼꼼함을 털어내고 자유의지로 창의적인 삶을 살아가면 정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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