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난 엄마가 산에 한 번도 못 가봤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양리리의 This is me! 이게 나야! ⓶
양리리  |  seoulbokjinews@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0.11.25  08:27:42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 양리리/ 현) 서대문구의회 비례구의원, 전)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이사, 전) 서대문도서관친구들 대표

[서울복지신문] “ㅇㅇ엄마가 ‘주말에 어디 산에 갔다 왔다.’거나 △△엄마가 ‘주말에 어디 산에 갔다 왔다’고 말할 때는 화도 났지만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어. 그 아줌마들이 나 산에 못가는 거 뻔히 알면서 말이야. 자랑하는 거 아닌 건 아는데, 그래도 기분이 좀 그렇더라고. 뭔 등산복을 그렇게들 사서 동네에서 입고 다니는지, 동네 아줌마들이랑 모임 때문에 식당가면 사람들이 다들 울긋불긋 등산복 차림으로 앉아있더라. 근데 태어나서 65년 만에 처음으로 산을 갔다 와 보니, 사람들이 왜 그렇게들 산에 가는지 알겠더라.”

“뭐? 65년 만에 처음 산에 갔다고? 태어나서 처음이라고? 그럼 60 넘게 한평생 살면서 산에 한 번도 안 가본 거야? 난 엄마가 산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몰랐네. 난 엄마가 산에 한 번도 못 가봤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내가 너무 무심했던 것 같아서 미안하네.”

5년 전 식구들과 주말에 서울시 서대문구에 위치한 안산을 다녀와서 엄마와 내가 나눈 이야기다. 지금이야 나도 산을 좋아하지만, 5년 전만 해도 난 산에 하나도 관심이 없었다. 온 나라에 등산 광풍이 불어 모두들 등산복을 평상복처럼 입고 다니던 그 시절에도 난 산에 갈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 독서모임사람들과 우리 동네 뒷산인 안산을 가게 되었는데, 푸릇푸릇한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따뜻한 햇살과 볼을 부드럽게 감싸는 바람, 생명력이 약동하는 기분 좋은 나무 냄새와 풀 냄새를 느끼고 나니 다시 산에 가고 싶었다. 그러다 그 좋은 느낌을 가족과 함께하고 싶어서 주말나들이 장소로 안산을 정하고 부모님과 우리 식구, 남동생 식구까지 모두 함께 안산을 산책하고 점심을 먹기로 주말약속을 했다.

세 살 때 걸린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가 불편한 우리 엄마는 평지에서도 오래 걷지 못하신다. 당연히 울퉁불퉁하고 경사가 있는 산에 갈 생각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러나 서대문구에 위치한 안산에는 ‘무장애자락길’이 설치되어 있다. 그래서 가볍게 일상복을 입고 운동화만 신어도 갈 수 있다. 안산 초입에서는 휠체어도 빌려준다. 또 전 구간에 목재 데크가 깔려 있어 휠체어를 탄 채로 산을 한 바퀴 둘러볼 수 있다.

휠체어에 엄마를 태운 후 아빠부터 시작해서 손녀들까지 식구들이 번갈가면서 휠체어를 밀고 안산 한 바퀴를 돌았다. 중간 중간 풍경이 좋은 곳에서는 멈추어서 가족사진도 찍고, 벤치에 앉아 싸온 과일과 커피를 나누어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웠다. 지극히 일상적이고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심지어 돈도 크게 들지 않는 평범한 일상인 가족등산이 우리 가족에게, 그리고 환갑을 훌쩍 넘긴 우리 엄마에게는 생애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 그래도 멈칫하는 것은 왜 일까?

지금도 택시를 탈 때면 나는 주저하곤 한다. 집에서 편하게 앱으로 출발지와 목적지를 넣고 부르면 집 앞까지 택시가 오고, 결재도 자동결재가 되어 택시문화가 급격히 변화했지만, 아직도 택시앱을 이용해서 택시를 부르거나 길에서 손을 들어 택시를 잡는 것이 어색하다. 앱 사용 방법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럴까 곰곰이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어릴 적 택시와 관련해 겪은 경험 때문인 것 같다.

어릴 적 우리 집은 32동까지 있는 큰 아파트단지 끝에 위치한 31동이었다. 몸이 불편한 엄마는 동네 아줌마들과 친해서 장보기에 그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으며 살았다. 우리 집에서 아파트단지 입구에 위치한 상가까지 가려면 족히 30분은 걸렸던 것 같다. 그래서 특별한 일이 없다면 나 대신 동네 아줌마들이 장보러 가는 길에 우리 집 장도 봐주셨다.

어머니는 평상시에는 장보기 이외에는 특별히 차를 탈 일도, 먼 곳을 갈 일도 없었다. 그러다 가끔 멀리 사시는 외할머니 댁에 갈 일이 생기면 그때 꼭 사단이 일었다. 집 앞에서는 택시를 찾을 수 없기에, 택시를 잡을 수 있는 큰 길이 있는 아파트 단지 입구까지 걸어 나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내 걸음으로도 30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를 엄마와 함께 걸으면 1시간은 넘게 걸리는 것 같았다. 중간 중간에 엄마가 힘들어 할 때면 쉬어야 했고, 행여 엄마 몸에 무리라도 갈까봐 어린 마음에 걱정되고 무서웠다.

그렇게 힘들게 아파트 단지 입구까지 나와도 택시잡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택시들이 흔치 않은 것은 그렇다고 치고 가끔 택시가 오면 엄마와 나, 남동생이 뻔히 서서 택시를 기다리는 것을 알면서도 쪼르르 앞으로 뛰어가서 택시를 잡아타고 가버리는 몰상식한 아저씨와 아줌마들은 흔했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재수 없게.......’ ‘여자’ ‘장애인’을 태울 수 없다며 욕설을 하고 가버리는 택시들도 있었다. 어른이 된 지금의 나라면 새치기를 하던 몰상식한 어른들과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과 여성, 아동에게 거침없이 혐오를 표현한 택시기사에게 어떻게든 항의를 했겠지만, 그 당시 나는 힘없고 사회적 시선에 주눅 든 나약한 어린 소녀에 불과했기에 그런 불편부당함을 오롯이 내 안으로 삭였다.

지금은 사회적 인식도 많이 변해서 그 무렵 택시 승차 때 겪었던 불쾌감을 느낄 기회(?)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우리 엄마는 아직도 아빠와 동반할 때를 제외하고는 ‘절대’ ‘혼자서’ 버스와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다. 물론 지하철 역사마다 휠체어리프트가 있고 저상버스도 많이 도입되어 휠체어 고정석도 있다. 그래도 멈칫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 장애인이동권이 확보되었다고 말은 하지만

“지하철에서 이따위 시위나 하고 말이야. 국민이 봉이야?", "왜 애먼 우리한테 그래, 왜 우리를 괴롭히는 거야?", "나가, XXX아. 왜 여기 와서 이래."

한 시민이 삿대질을 하며 외쳤다. 평소 45초밖에 걸리지 않던 지하철 승하차가 10분 넘게 지연되자, 시민들의 불만은 폭주했고 일부 시민들의 욕설과 비난의 눈초리는 전동휠체어를 탄 채 지하철 안을 일렬로 이동한 장애인들에게 그대로 꽂혔다. 2018년 14일 오전 10시 1호선 신길역에서 시청역까지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신길역 리프트에서 발생한 장애인 사망 사건에 항의하며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벌인 시위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이다. 물론 우호적인 분들도 계셨겠지만, 대부분은 불편한 마음을 밖으로 드러내지 못할 뿐이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이 일은 2년 전 일이지만 낯설지 않다. 얼마 전 읽은 책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도 장애인의 버스 탑승으로 지연된 시간만큼 추가요금을 지불해야 되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렇게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과거에 비해 장애인 관련 국가정책은 순차적으로 개선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장애인들이 참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말한다. 비장애인들은 계단을 오를 수도, 에스컬레이터를 탈 수도, 엘리베이터를 탈 수도 있는 지하철에서 목숨 걸고 리프트를 탈 수 밖에 없는 장애인들에게, 참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으니 국가에 감사해하며 살라고 한다. 일반 버스든 저상버스든 먼저 오는 버스를 아무 생각 없이 탈 수 있는 비장애인들이 일단 저상버스를 기다려야 하고, 휠체어용 발판이 고장 없이 잘 나와 주기를 기다리며, 기사가 차를 세우고 휠체어 자리에 고정시켜줘야 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주위 사람들에게 끼치는 무거운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장애인들에게 장애인이동권이 확보되었다고 말한다. 그나마 사람들로 붐비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출퇴근시간에 그 많은 사람들을 제치고 휠체어자리까지 가기란 웬만한 담력의 소유자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장애인을 위한 안산 무장애 자락길과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 저상버스의 도입은 유모차를 미는 부모들, 다리가 불편하신 어르신, 어린아이들 모두에게 편리하다. 비장애인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당연히 선택하였던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오랜 시간 목숨을 걸고 쟁취한 것들의 결과물일 수도 있다. 난 누구든, 스스로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던 것들을 다른 사람들도 함께 누리는 것에 대해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를 위한 특권이 아닌, 보편적 권리 확대를 위해 모두 함께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 아직도 그런 사람이 있다면 말이다.

양리리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적십자 소방관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3446 서울특별시 은평구 은평터널로7길 33. 101호(신사동)  |  대표전화 : 02-2285-0691 
구독 및 광고 : 02-2272-3613/4  |  등록번호 : 서울 다 10558  |  발행인 겸 편집인 : 장경근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장경근
Copyright © 2012 서울복지신문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