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훈 서울특별시사회복지협의회장
김현훈 서울특별시사회복지협의회장

[서울복지신문] 감정노동이라는 용어가 어색하지 않고, 또한  스스로를 감정노동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감정을 가졌기에 직장인들 대다수가 감정노동자의 범주에 속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애초 감정노동이란 말은 미국의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가 사용한 용어입니다. 그의 저서 ‘감정노동’을 통하여 “감정노동은 배우가 연기를 하듯이 감정을 숨긴 채 직업상 다른 표정과 몸짓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감정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타인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늘 긴장하며 자신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으로 적시하고 있습니다. 조직에서 바람직하게 여기는 감정을 위해 자신의 감정과 무관하게 행동하는 것으로 판매, 유통, 음식, 간호 등 대인서비스 직종에서 흔히 발생한다는 견해입니다.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표정이나 몸짓 등 고객의 감정을 맞추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여 감정이 상품화되어 서비스된다는 것이지요. 앨리 러셀 혹실드는 대표적인 감정노동자로 항공기 승무원을 꼽았습니다.

소비자의 목소리가 커지고 고객 만족을 중요시 여길수록 감정노동자들에게는 각종 스트레스가 증가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감정노동자들 중에는 강요된 친절과 고객의 지나친 요구에도 기업의 이윤과 고객의 감정을 맞추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려다보니 우울증이 징계해직자와 비슷하다는 설문조사도 있습니다. 감정노동자의 피해와 어려움을 고스란히 느끼게 하는 대목입니다.

서울 강동구가 지난해 8~11월 관내 공공부문 감정노동자 405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한 결과 감정노동자의 6%가 우울장애를 겪고 있으며 감정노동자의 5%는 급성스트레스장애를, 2%는 불안장애가 있는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 보건복지부가 5년 단위로 실시하는 정신질환실태조사(2016년) 기준 주요 우울장애(1.5%), 외상후스트레스장애(0.5%), 범불안장애(0.4%)의 4~5배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감정노동자의 28%는 소화장애를 앓고 있으며, 근골격계질환을 가진 노동자도 13%로 집계되었습니다.

감정노동자 2명 중 1명은 하루 일과의 거의 모든 시간(45.9%)을 고객 응대업무에 할애하고 있는 것으로 통계에 잡혔습니다. 또한 감정노동자가 고객에게 받는 정신적·성적 폭력은 남녀 모두 ‘위험’ 수준으로 나타났으며, 6%는 신체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여성 노동자들은 남성 노동자들에 비해 친절을 강요당하는 감정노동에 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여성 노동자들은 일반적으로 화를 내야 하는 상황이지만 ‘화를 내서는 안 된다’는 외부의 요구와 규제 때문에 웃는 얼굴로 끝까지 응대해야 하는 어려움을 가장 큰 문제로 지목하였습니다.

이번 용역결과를 토대로 구는 올해 7월 중 ‘강동구 감정노동자 권리보호 가이드라인’을 수립해 책자로 제작해 배포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공동주택 노동자·필수노동자·이동노동자·민간 및 가정 어린이집 보육교사·사회복지시설 종사자 등 감정노동자를 업무별로 세분화해 각각의 대책을 마련키로 했다는 것이지요. 또한 올해부터는 주요 민원부서의 행정전화를 기존 선택녹음에서 자동녹음으로 변경해 민원인의 각종 폭언·욕설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니다. 구청 내 심리상담실을 운영하고, 강동·송파·강남구에 위치한 18개 외부 전문상담기관 이용도 지원한다고 합니다. 1인당 최대 20만원의 정신건강검진기관 진료비를 지원받을 수 도 있습니다.

중앙정부를 비롯해 지방정부에서 감정노동자에 대한 여러 가지 피해예방 대책과 방안들이 앞 다퉈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제도가 따라준다고 해도 선행되어야 할 과제는 ‘나부터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역지사지라는 말도 있듯이 상대에게서 나를 찾아보는 것입니다. “내가 저런 경우에 처한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수시로 점검하고 자문해 보는 것입니다.

서비스에 종사하는 감정노동자에게나 소비자에게도 엄격한 인권이 있습니다. 고객 앞에서 웃고 뒤에서 우는 감정노동자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헤아리고 보듬어줄 수 있는 아량을 갖는 것이 성숙한 사람들의 자세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며 응대업무를 해야 하는 감정노동자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나에 대한 성찰과 배려의식이 경주되어야 할 것입니다. 모두가 공정한 사회에서 마음껏 자신의 일을 부단없이 해나가면 좋겠습니다. 

저작권자 © 서울복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