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훈 서울특별시사회복지협의회장
김현훈 서울특별시사회복지협의회장

[서울복지신문] 긍정적인 성격 탓일까요. 나 자신을 불행하다고 여긴 적이 별로 없습니다. 어떠한 상황 중에도 불행이란 그늘에 가려진 나를 생각해 본 적이 없고, 지레짐작 불행할 것이라고 예측해 본 일도 없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도 내가 불행한가, 행복한가를 생각하면 ‘행복하다’는 쪽으로 가산점을 더 주게 됩니다. 그렇다고 남들에 비해 직업이 월등하다거나 지위나 명예가 출중해서가 아니며, 먹고 마시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취할 수 있는 풍족함이 있어서도 아닙니다.

내가 불행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은 아직 사랑할 가족이 있고, 나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지역사회의 소외계층을 돕고 섬길 수 있는 최소한의 여력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다면 아직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하고, 하루하루를 감사함으로 보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는 것이겠지요.

아주 가끔 “나는 정말 행복한가?”라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져보고는 합니다. 일종의 자아점검이겠지요. 은연중에 가려진 ‘행복 본능’을 깨우기 위한 방편이라면 너무 거창한 말일까요? 아마도 그건 내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작은 바람 일 것이며, 맞이한 오늘을 행복하게 살기 위한 삶의 등식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쉬운 예로 가족들과 한껏 멋내고 근사한데 가서 맛있는 걸 먹는다고, 혹은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 즐거움에 흠뻑 젖는다고 해도 그게 참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못합니다. 어쩌면 순간의 기분에 들떠 괜한 낭비를 했다고 후회할 수도 있습니다. 육신의 욕구를 채우려는 자아추구로는 행복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지요.

살면서 경험적으로 깨달은 것은, 가난과 행복은 절대적으로 별개의 문제이며 물질이 삶의 행복과 불행을 구분하는 잣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물질의 풍요로 인해 얻어지는 여유 정도는 있을지 몰라도 그 자체가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못합니다.

몇 해 전 발표된 바에 의하면 하버드대학교와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의 연구결과, 남을 위한 한달 소비액이 많을수록 행복지수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자신을 위한 한달 소비액은 행복지수와 무관했으며, 보너스 3000달러를 받은 그룹, 5000달러를 받은 그룹의 경우에도 보너스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남을 위해 쓴 액수가 많을수록 행복지수가 높았던 것이지요.

나눔은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반면 자기 욕망의 절제와 희생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또한 충동에 의한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이며 진정성이 있어야 합니다. “테레사수녀가 봉사활동을 하는 동영상을 보기만 해도 면역력이 높아진다”고 했듯이 남을 도울 때 신체적으로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것이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결론적으로 평생을 행복하게 지내려면 남을 돕는 일에 인색하지 말고 ‘모두가 행복한 쪽으로’ 힘을 모울 때 그 자신도 행복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나눌 줄 알고 불우한 처지의 사람을 도울 줄 아는 이들이 바로 행복의 주체입니다. 그 주체들은 내가 행복하고 우리가 행복하며 사회전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그루터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나는 행복하다”라는 생각이 행복한 마음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나는 행복하다”는 마음의 결론에는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하면서 그들의 행복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이뤘다는 감사가 있으며, 그 마음에서 참된 행복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제라도 잠자는 ‘행복 본능’을 일깨워 행복한 삶을 선택하는 복된 인생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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