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왕 Qwon SunWang, 흐르는 엘랑비탈Flowing elanvital,75X105cm, Silkscreen, Stencil, 2012
권순왕 Qwon SunWang, 흐르는 엘랑비탈Flowing elanvital,75X105cm, Silkscreen, Stencil, 2012

[서울복지신문]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이미지중 하나는 2차 대전의 종지부를 찍는 원자폭탄이다. 원자폭탄은 우라늄 또는 플루토늄 등의 원자핵을 핵 분열시킬 때 얻어지는 에너지를 이용한 폭탄으로 실전에서 사용되었다. 최초로 실전에 사용한 원자폭탄은 일본에 떨어진 히로시마 리틀보이Little Boy다. 이러한 원인은 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였고 미국의회는 전쟁참여와 원자폭탄을 투하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팻맨Fat Man이 투하된 후 일본은 패망하였고 동아시아의 역사적 물줄기는 바뀌었다. 포츠담회담 이후 일본의 전후 처리 문제와 한반도는 강대국들의 각축장이 된 것이다.

핵폭탄이 투하된 후 우리는 광복을 맞았으나 한반도는 다시 냉전체제로 들어갔다. 그 이후 세계 각국은 핵폭탄 실험이 경쟁적으로 지속되었다. 세계가 인정하지 않지만 북한도 핵보유국으로 된 것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현재 한반도에는 비핵화 논의가 중요한 의제로 되어있다.

근현대사 중 이 폭탄의 존재는 익명의 사람들을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삭제하는 도구가 되었다. 그 동안 순수한 과학이 만들어낸 발명품들은 인류의 삶을 지속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이 폭탄이야말로 우리의 근현대사 전체를 바꾼 중요한 사건이었으며 과학이 소시민의 삶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과학문명은 인류의 삶을 풍요하게 해 준 다는 명분하에 제국주의와 물질주의에 맞물려 언젠가 인류를 절멸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거대 시스템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생의 의지는 남아 있다. 누가 우리를 편집하는가. 긴 구멍 뚫린 검은 줄은 필름을 자르고 난 조각들이다. 이어붙이기의 흔적들을 파편적으로 보여준다. 과학자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과학의 에너지는 정치적인 에너지로 바뀐다. 편집에 의한 그들과 우리는 진영논리에 빠져 결국 너와 나를 나누었다.

마치 영화의 편집술처럼 과학적 사건들은 역사적인 현재와 충돌한다. 영화가 만들어진 이후 몽타주시대는 지속되었다. 영화에서의 몽타주는 이어붙이기다. 가장 사실적인 환상을 심어주는 것이 몽타주이며 미디어의 몽타주를 통해서 역사는 새로운 현재를 직조한다. 우리는 저 폭탄이 떨어진 이후 광복을 맞았다. 화면 가운데 희미하게 배치된 하얗게 말라버린 풀! 이것은 긴 겨울의 마른 풀이다.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릴 때 다시 돋을 풀이다. 분단 이후 우리는 이율배반을 겪고 있다. 우리는 통일을 원하는 자와 원치 않는 자로 나뉘었다. 지금도 한반도는 필름을 자르고 다시 붙이는 강대국들의 몽타주 대상이다. 결론은 나왔다. 민족의 화해만이 살 길이다. 폭염의 기세가 꺾인 8월의 끝자락에 광복이후의 시대에 한반도 비핵화의 격전장이 된 우리의 땅을 생각해 본다.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초빙교수 권 순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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