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외 학습장에서의 필자(레드 점퍼)
야외 학습장에서의 필자(레드 점퍼)

[서울복지신문]  집안 사정으로 초등학교도 못 나왔지만 늘 배우고 싶었다.

한국에 와서 야간 근무를 하는 도중에도 배우고 싶다는 열망은 좀처럼 사그라 들지 않았다. 영어 알파벳조차 몰랐지만, 결국 한양학원에서 검정고시를 공부했다. 다른 사람들은 하루 만에 암기하고 이해하는 지식이었지만, 나는 열흘 정도 꼬박 노력해야 간신히 외울 수 있었다.

대학을 가고 싶었지만, 차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밤에는 일을 하고 낮에는 공부를 하는 만큼 몸은 힘들었고 한국 문화나 역사도 모르는 터라 무작정 외워야 했다. 한여름에도 열이 펄펄 끓는 몸으로도 검정고시를 끝까지 친 덕에, 간신히 고등학교 졸업장을 딸 수 있었다. 그러고 나니 대학에 가고 싶다는 열망이 강해졌다. 비록 대학 등록금이 비싸다 한들, 생애에서 가장 젊은 날은 지금 뿐이니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향에 있는 딸은 내 선택에 적극 찬성하며 할 수 있을 거라고 응원해주었다.

일과 병행할 수 있는 학교를 찾아다니던 중 발견한 게 명지대학교 미래융합대학이었다. 나는 심리치료학과와 사회복지학과 사이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공부하는 만큼 졸업하고 나서 돈이 되는 직업을 택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크리스천으로서 늘 소망하던 일이 있었다. 바로 재외동포의 자녀들을 돕는 일이었다. 신문이나 뉴스에서는 종종 재외동포 자녀들의 비행 사례를 다루지만, 정작 그 아이들이 언어나 외모, 문화가 다른 나라에서 예민하고 상처받기 쉬운 성장기를 무사히 보낸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다루지 않는다. 실제로 건너건너 아는 재외동포의 자녀들이 다른 한국인 아이들과 술을 마시고 싸웠던 사건이 있었다. 부모들이 달려가 선처를 호소했지만, 합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아이들은 부모와 떨어져 본국으로 추방되었다.

그 아이들은 이 한국이란 곳을 어떻게 기억할까? 나는 사회복지학과에서 사회복지사가 되어 그 아이들을 돕기로 결심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서 나오는 말마따나 내 편 하나 없는 타향에서 외로워하고 쓸쓸해할 아이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타인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싶었다.

대학에 들어와 들은 교양과목들은 무엇 하나 쉬운 게 없었다. 한국어가 서툰 만큼 글쓰기 수업에서 내주는 과제 하나 하나가 벅찼고, 암기가 위주인 고등학교 영어와 달리 대학에서 배우는 영어는 모르는 단어에 회화까지 난국이었다.

관심을 가졌던 심리학도 전문 용어들이며 차차 심화되는 내용 때문에 도통 한번 들어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노트에 교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하나하나 다 적고 오가는 길에 이어폰을 낀 채 영어를 몇 번이고 들었다. 뭘 하면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성미인지라 포기할 마음은 없었다. 게다가 교수님께서 단지 이론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사례를 들어 성의껏 설명해주시는 덕분에 내 경험에 대입해볼 수 있었다. 가령 인간 심리와 이해라는 수업을 들으면서 나는 내 딸을 떠올렸다. 내내 이른 나이에 딸을 낳아 기르면서 나름 예쁘게 키웠다고 생각했다. 막상 수업에서 경험부족이었던 내가 얼마나 서툴렀는지, 딸을 혼내고 다그치기만 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이미 딸은 다 자랐고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딸에게 내 딸아이의 아이들, 손주들을 어떻게 키우면 좋은지 알려줄 수는 있을 것이다.

같은 크리스천인 사장님은 내 공부 목적이나 열의를 보고는 흔쾌히 학업을 위해 근무 시간을 조절해주셨다. 덕분에 즐겁게 공부할 수 있었다. 쉴 틈이 없으니 아플 틈도 없었다. 그렇게 바쁜 시간을 보내던 도중 과제 때문에 도서관에 갈 일이 있었다. 학생증을 찍고 책을 품안에 안은 채 도서관을 나왔을 때, 불현듯 나는 가슴이 설렜다. 여태껏 내가 바라던 대학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게 그제야 실감났다. 레포트와 발표, 시험이 잇따르는 와중에 딸을 떠올리기도 했다. 의지할 부모 없이 혼자서 대학을 씩씩하게 다닌 딸의 고충이 이해되니 가슴이 아픈 한편, 새삼 자랑스러웠다.

같이 공부하는 학우들도 재외동포라는 편견보다는 함께 공부를 어렵사리 시작하는 학우로서 나를 다정하게 대해주었다. 게다가 같은 크리스천인 학우들과 함께 서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기도하면서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될 수 있었다.

나는 학업을 고민하는 재외 동포들을 격려해주고 싶다. 처음에는 망설이는 건 당연하다. 언어와 문화도 다르고 일도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작하지 않는다면 내내 후회하고만 있게 될 것이다. 후회는 몸만 아니라 마음까지 힘들게 만든다. 나는 그들이 후회하지 않길 바란다.

- 안금석/ 명지대학교 미래융합대학 창의융합인재학부 1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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