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구독자 집 앞에 붙어 있던 쪽지
어느 구독자 집 앞에 붙어 있던 쪽지

[서울복지신문=김한울 기자] 아버지께서는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시면 9시 뉴스를 꼭 챙겨보셨다. 국민으로서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고 어린 나를 꼭 옆에 앉히셨다. 그런데 지금은 텔레비전을 켜고 싶지 않다고 하신다.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지치는 뉴스들이 어느새 매스컴을 장악한 탓이다. 침체된 경기는 국민의 목을 조르고 빈부격차는 점점 벌어져 자괴감을 더한다.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들의 기상천외한 범죄들이 마치 경쟁하듯 잔인함을 더하고 아주 어린 아이들이 ‘흙수저와 금수저’의 출신 계층을 장난삼아 논하고 여성과 남성이 편을 갈라 서로를 비난한다. 또 잊을 만하면 보도되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향한 분노의 불매 운동, 국민을 대변해야 하는 정치인들의 지긋지긋한 이권 다툼에서 비롯되는 삭발식과 단식 쇼 등 문제를 말하자면 하루 종일 나열할 수 있는 사건들 속에 우리는 참 피곤한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준비했다. 아직은 살만하다는 뉴스를,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가 그토록 간절하게 바라는 희망과 믿음을 주는 사례를 찾아봤다. 주변을 돌아보면 너무 따뜻한 세상에 살고 있다.

□ 어느 신문 배달부의 눈물

한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신문 배달하다 오열했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작성한 배달부는 매일 새벽 1시부터 4시까지 고급 아파트에 신문을 전하는데 어느 집 앞에 작은 메모가 하나 붙어있었다. 앞으로는 신문함에 넣어달라는 부탁이었다. 쫓기듯 신문을 내던지고 갈 때가 많은데 한자 한자 정성스럽게 쓴 메모와 직접 만든 신문함을 보고는 그럴 수 없어 문 앞으로 조용히 걸어가 신문을 넣었다. 순간 80은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께서 본인이 구독자라며 한손에 귤과 따뜻한 음료를 들고 나오셨다. 그리고는 추운데 고생이 많다며 나이가 어려 보이는데 왜 이런 일을 하느냐며 물어오셨다. 그날따라 기분이 싱숭생숭하기도 하고 인생에 대한 좌절감을 느끼던 찰나여서 하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남들 다 자는 시간에 피곤한 몸으로 찬바람 맞으며 이리저리 뛰는 모습이 초라하고 속상하다며 한탄했다. 그러자 할아버지께서 “살아보니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다보면 빛을 볼 날이 온다”며 “돈도, 꿈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건강이 최고”라며 꼭 안아주셨다. 할아버지의 온기가 온 몸으로 퍼지며 좌절감으로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이 녹기 시작했다.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그러면서 힘들고 지쳐 쓰러질 것 같을 때면 어디선가 낯선 위로의 손길들이 등장해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게 된다고 썼다. 분명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라며 말이다.

□ 월세를 내지 못했는데 1층이라니요

아내와 함께 해물탕을 판매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자영업자 김모 씨는 최근 두 달 간 월세를 내지 못했다. 건물주의 연락이 올 때면 마치 저승사자의 독촉만큼 무섭고 괴로웠다. 그런데 악재는 겹친다고 엎친 데 덮친 격 불의의 사고로 건물에 불이나 아내가 큰 화상을 입게 됐다. 당장 해결해야 할 월세도 막막한데다 아내의 부재로 가게를 열 수도 없었다. 더군다나 건물 화제의 원인이 2층에서 발생했다는 결과에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상황까지 이어졌다. 김모 씨는 죽기를 각오했다. 아내와 퇴원하면 함께 죽자는 눈물의 약속도 했다. 절망 속에 도무지 빛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건물주에게 ‘2층을 비워달라’는 문자를 받았다. 지금 당장 비울 수가 없으니 아내가 퇴원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빌었다. 또 밀린 월세와 건물 내부 공사비용 또한 차질 없이 배상하겠다고 애원했다. 그러자 건물주가 뜻밖에 제안을 해왔다. ‘자신이 오해하게 말한 것 같다며 2층을 비우고 본인 건물의 1층으로 옮기면 어떻겠느냐’며 말이다. 순간 잘못 본 것이 아닌지 눈을 한참 비볐다. 밀린 월세와 손해배상도 더 이상 묻지 않겠으니 지금은 아내가 무사히 퇴원할 수 있도록 간호에 힘쓰라는 응원도 덧붙였다. 1층이라면 평수도 지금보다 훨씬 크고 손님들의 접근성도 훨씬 좋아진다. 그런데 월세는 지금과 동일하게 받겠다는 제안도 받았다.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아 건물주에게 묻고 또 물었다. “왜 제게 이렇게까지 하십니까?” 그러자 건물주는 “있는 사람이 나누는 것이 뭐가 그렇게 대단한가”라며 “월세를 받지 않아도 내 생활에 지장이 없고 내 소유의 건물에서 불이 났으니 내가 수리하는 것도 맞다”고 말했다. 그리고 “서로 가진 것 내에서 돕고 살다보면 삶에 돈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웃었다. 

저작권자 © 서울복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