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자는 1분 1초라도 급한 응급 환자를 막아서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청원자는 1분 1초라도 급한 응급 환자를 막아서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서울복지신문] 폐암4기, 80세 노모가 탄 구급차였다. 어머니는 갑자기 호흡이 약해지고 심한 통증을 호소했다. 동승한 아들과 며느리는 한시가 급했다. 아마 이들을 태운 구급차도 그러했을 것. 도로 위 사이렌이 정신없이 울렸고 1분 1초라도 병원에 빨리 도착하고자 서두르던 중 원망스럽게도 택시와 접촉 사고가 났다. 지난달 8일 서울 강동구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때의 상황이 고스란히 녹화된 블랙박스와 택시 기사와의 실랑이가 녹음된 파일이 공개됐다. 택시 기사는 사고 처리를 하고 가라며 구급차를 막아섰다. 차선을 변경하다 생긴 가벼운 접촉 사고였으므로 사람이 크게 다치거나 차량을 이동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상황이 고스란히 담긴 녹취 자료를 들어보면 구급대원은 “응급 환자가 있으니 병원에 모셔다드리고 사건을 해결해드리겠다”고 말했으나 택시 기사는 “지금 사건 처리가 먼저인데 어딜 가느냐, 환자는 다른 구급차를 불러서 병원에 보내라”며 불응했다. 이어 “저 환자 죽으면 내가 책임지겠다. 응급 환자도 없는데 일부러 사이렌 켜고 빨리 가려한 것이 아니냐, 나도 사설 구급차 일 해봐서 안다. 진짜 환자가 있는 것이 맞느냐”며 언성을 높였다. 급기야 구급차 문을 열고 환자의 사진을 찍기도 했다. 택시 기사의 몰상식함에 말문이 막히는 순간이다.

한여름 뙤약볕에서 10여 분간 말다툼이 이어졌고 결국 아픈 어머니는 하열까지 하셨다. 택시 기사의 바람대로 급히 다른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5시간 만에 숨졌다. 아들은 지난 3일 ‘응급환자가 있는 구급차를 막아 세운 택시 기사를 처벌해 주세요’라는 청원 글을 올려 현재까지 59만 명 이상의 국민들에게 동의를 받았다(7일 오전 4시 기준 59만5552명). 그는 1분 1초라도 급한 응급 환자를 막아서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자 국민들은 택시 기사의 신상까지 찾아내며 그는 단순히 구급차를 막아 세운 것이 아니라 살인을 저지른 것과 같다며 분노했다. TV조선 기사에 따르면 택시 기사는 1989년생의 초보 택시 기사였고, 입사 24일 만인 6월 8일 사고를 냈다. 현재는 건강상의 이유로 퇴사한 상태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택시 기사의 죄목으로 살인 적용을 강하게 주장하는 가운데, 현행법상 그는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 먼저 소방기본법 위반을 들 수 있다. 소방자동차로 분류돼 있는 구급차의 구조나 구급 활동을 막은 혐의가 인정되면 2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받게 된다. 또 응급의료법 적용도 가능성이 높다. 응급의료종사자의 구조, 이송, 응급처치 등을 방해한 것이 인정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 부과로 형벌은 높아진다. 다만 당시 구급차에 응급의료사가 타고 있지 않았다는 점이 변수다. 미필적 고의 살인죄도 적용할 수 있다. 응급환자가 안에 있다는 점을 환자 가족들이 여러 번 말했고, 택시 기사 또한 환자를 눈으로 확인했고,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 아울러 응급실로의 이송이 15분가량 늦어진 점, 환자가 5시간 후 사망했다는 점 등은 살인죄 적용이 가능한 상황이다.

사건을 배당받은 강동경찰서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외에 강력팀을 추가 투입해 수사하고 있으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전반적으로 수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용표 서울지방경찰청장 역시 6일 기자간담회에서 “언론과 청와대 국민청원 등에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혹은 ‘업무방해’ 등 여러 사안이 거론되는데 추가적인 형사법 위반 여부는 물론 전반적으로 수사하겠다”고 말했다.

굳이 택시 기사의 심정까지 헤아릴 이유가 없지만, 한편으로는 궁금하다. 그는 지금 자신에게 벌어진 실로 엄청난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말이다. ‘후회할까? 아니면 여전히 떳떳할까.’ 어쨌든 본인의 이기적인 선택으로 차량만 수리하면 될 단순한 사고를 걷잡을 수 없이 키웠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러한 사실은 법적으로 살인죄 적용 유무를 떠나, 죽을 때까지 그를 괴롭히는 꼬리표가 될 것이다.

하지만 누구를 원망할까. 모두 본인 스스로 자처한 일인 것을. 그는 분명 살인을 피할 수 있었다. 사고는 피할 수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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