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훈 서울사회복지협의회장
김현훈 서울사회복지협의회장

[서울복지신문] 며칠 전 좋아하는 후배가 힘든 일이 생겨 주저앉기 일보 직전이라며 저를 찾아왔습니다. 한참 이야기를 들어주고 토닥거리다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후배는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를 만나러 오기 전과 지금의 마음가짐이 달라졌다는 말을 합니다. 아까는 억장이 무너져내릴 만큼 힘들었는데 지금은 홀가분해졌다고 고마워했습니다. 우리가 대화하며 흘려보낸 시간이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니 상당히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사회적 관계 속에 있습니다. 설령 외로움을 즐긴다고 하더라도 그 기간이 지속되면 우울해지고 못견디는 날이 찾아오게 됩니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생각한 것을 말로 전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상대방의 감정을 내 것처럼 느낄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은 항상 인기가 많습니다. 모두 그를 찾고 그와 이야기하고 싶을테니까요. 

반면 내 이야기만 하고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주변에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고립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듯 주고 받는 말은 사람과 사람 관계에서 아주 중요한 작용을 하며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몇해 전 동네에 어르신 한 분이 식사를 거르고 계신다는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어쩐지 수척해지셨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도 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찾아가 보니 식기류는 설겆이를 한 흔적도 없이 말라있었고 밥통을 보니 며칠 묵은 밥이 싸늘하게 식어 있었습니다. "어르신 왜 식사를 안하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여쭤봐도 대답하지 않으시고 귀찮은 내색을 하셨지요.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어르신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오늘 제 이야기가 어르신께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리고는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음식을 드시지 못할 정도로 마음에 꽉 막힌 것이 무엇인지 저는 모르지만 포기하지 마세요. 한 입이라도 좋으니 식사를 거르지 마세요. 먹지 않으면 병이든, 상처든, 시간이든 무엇과도 맞설 기력이 없습니다. 용기를 내세요 어르신"이라고. 이어 손을 꼭 잡고 어르신에게 밥은 생명을 위한 기도이니 한번에 채우지 말고 조금씩 천천히 오래 오래 드셔야 한다고 당부를 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다음 날 어르신을 돌보는 복지담당자가 제게 연락을 해왔습니다. 아주 조금이긴 하지만 식사를 하셨다고요. 뛸 듯이 기뻤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이렇게나 빨리 어르신의 마음을 열게 한 원동력은 진심을 다해 전한 말 한마디가 전부였습니다. '말의 힘이 정말 대단하구나'라는 사실을 한 번 더 느낀 계기였지요. 

여러분 혹시 주변에 힘들어하는 동료가 있습니까. 아니면 본인 스스로 속이 많이 상하십니까? 마음을 삭히며 뱉는 독백말고 대화를 하세요.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먼저 다가가 손내미세요. 함께 하는 대화에는 진실로 힘이 있습니다. 소통에는 답이 있습니다. 말할 상대가 없다면 국가에서 운영하는 상담 센터도 있고 사설 복지관에서도 상담받을 수 있습니다. 모든 어려움을 해결하는 창구가 반드시 열려 있습니다. 그러니 대화를 하세요. 툭 터놓고 허심탄회하게 말입니다. 

저작권자 © 서울복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