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데스크
고령화 사회 ‘공포’에서 빨리 벗어나야

심우일
본지 미미어본부장
경제칼럼니스트

인생 팔십이 보편화 되었고 평균수명이 더 연장된다면 인생 1백이 보편화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구고령화에 따른 인구 형태를 살펴보면 2050년에 이르면 노인인구가 1천5백만 명 유소년 인구가 380만명인 항아리 모양이 된다.

고령화는 개인과 사회에는 축복이 될 수 있지만 한편에서는 커다란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고령화 사회에 대해 축복 못지않게 우려의 시선이 점점 늘고 있다.
최근 매스콤이나 사회보고서에서 고령화 사회의 사회적 부담을 과다하게 부각시키는 경향이 있다.

고령화가 사회적으로 부담이 커진다는 것은 냉정히 말하면 가설이다. 먼 미래에 생기게 될 일에 대해서 다른 어느 문제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글로벌적으로 본다면 고령화 문제는 기후변화나 엔트로피 증가 등과 같이 n분의 1의 문제이다. 우리가 미래에 봉착하게 될 에너지 문제, 천연자원과 식량문제, 원전문제 , 기후문제 등과 같은 성격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현재는 문제가 되고 있지 않지만 물문제는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한다. 21세기에는 물 때문에 전쟁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반기문 UN사무총장은 UN안전보장이사회에서 물부족 사태가 평화로운 경쟁을 폭력으로 몰아가고 홍수와 가뭄으로 대량이주가 늘어나고 사회가 대립하여 평화적으로 갈등을 해결하려하는 각국의 노력이 흔들린다고 경고 했다.

항아리 모양으로 불룩해진 배를 가졌다고 고령화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지금 서둘러 달려가고 있는 미래가 노인의 세상이 된다고 비판해서는 안 된다. 노령화 사회의 단점만을 부각해서도, 장점만을 부각해서도 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노령화가 되면 사회가 덜 폭력적이고 부드러워지면서 현명해 진다. 하지만 의료보험체계가 높아져 사회적 재정비용이 더 많이 소요될 수 있다. 노인부양률이 높아지면 젊은이들의 어깨가 무거워 질 수도 있다.
노령화 사회는 많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좋다 나쁘다 싫다라는 문제의 차원이 아니다. 이미 우리에게 닥친 사건이기도 하다.
은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 고령화 사회에서 어르신들이 경제적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생의 후반에도 파트타임이라도 능력이 닿는데 까지 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일자리는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의미 이상의 행위이다. 정서적으로도 건강을 유지하는데 있어서도 큰 도움을 준다. 어르신과 사회가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어르신 스스로도 변화가 필요하다. 고령화 시대에서는 어르신들은 생산자 역할을 해야 한다. 유소년이 380만이 되는 세상에서 노인이라고 노동능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뒷짐 짓고 살 수는 없다.

고령화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은 모두 반복지적 정서에 연결돼 있다고 볼 수 있다. 국가 재정이 나라의 세금이 노인들을 위해 쓰여지고 소비되는 것에 불만을 갖는 것이다. 젊은세대들은 노인복지가 국가 재정위기의 한 축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듯 하다.
노인세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우리나라에서만 생긴 현상은 아니다. 미국도 여기서 자유로울수 없다. 미국에서는 복지지출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어르신’들을 탐욕스런 노인(greedy geezers)라고 부른다고 한다.

고령화 사회를 부정적으로 부각만 하는 것은 과장된 예측이다. 고령화 사회는 인간 누구나가 겪어야 할 당연한 과정이다. 이를 세대전쟁으로 보려는 협소한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늙지 않는 사람 없고 쇄약해지지 않는 사람 없다.
생명연장은 인간의 바람이며 꿈이었다. 막상 그런 시대가 왔는데 우리는 축복하지 못하고 재앙을 대하듯이 하고 있다. 비용과 재정이 들더라도 생명연장은 인류에게 축복이라는 점을 긍정해야 한다. 고령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 때문에 이를 거부한다면 그야말로 자승자박이다.

과도하게 부풀려진 고령화 사회에 대한 공포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고령화 사회가 많은 부담이 줄 것이라는 예측도 냉정히 말한다면 가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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