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균화/ 주필, 영예회장, 교수 
정균화/ 주필, 영예회장, 교수 

[서울복지신문]  정치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치란 본래 국민을 '바르게(政=正) 다스려 이끈다는 뜻이다. 그러함에도 우리 정치인들은 바르게 이끌기보다 자신이 속한 편의 이익을 더 생각하는 것 같다. 국가 백년지대계를 생각하는 의로운 정치보다는 눈앞의 '출세'와 '권력'이라는 이익을 얻기 위해 자기편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한 경우로 의심되는 사례가 많다.

‘견리망의(見利忘義)’ 즉 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잊다 는 뜻이다. 지식인의 대표 격인 교수들이 2023년을 사자성어로 ‘견리망의’을 꼽았다. 교수신문은 전국의 대학교수 1315명을 대상으로 응답자 30.1%(396표)가 ‘견리망의'를 첫째 화두로 꼽았다고 밝혔다. 분양사기, 전세 사기, 보이스피싱, 교권침해. 스토킹범죄, 보험사기 범, 마약사범 등에 대해서도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이 정당화되다시피 해 유난히 씁쓸한 사기 사건도 많이 일어났다. 특히 여교사의 자살 등 당장 내 아이의 편익을 위해 다른 아이나 선생님의 피해를 당연시하는 사건들이 아이들에게 당장 눈앞의 점수나 이익을 위해 사람의 기본 도리를 뒤로하라고 가르치고 있지 않은지 돌이켜 봐야 한다. 결국은 이러한 결과는 사회 전체를 공멸로 몰고 간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시민들은 더욱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한 이익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럴수록 사회 지도층이 공동체의 의로움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한다. 부와 권력 차원에서 이미 심각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두 번째는 '도둑이 도리어 매를 든다는’적반하장(賊反荷杖)' 25.5%(335표)이 꼽혔다. 권력의 방패로 죄가 없다고 검찰에 맞서고 법원의 재판 지연작전을 펼친 일부 정치인들의 뻔뻔함이 더 큰 문제다. 세 번째는'피리를 불 줄도 모르면서 함부로 피리 부는 악사 틈에 끼어 인원 수를 채운다는‘남우충수(濫竽充數)'를24.6%(323표)이다. 실력 없는 사람들이 꼼수로 ’비례대표‘라는 자리를 차지하고 이들 중 일부는 사악한 속임수의 억지 주장으로 사건을 만들고 더러운 말투로 본인은 물론 국민들 수준까지 해롭게 했다. 따라서 금년 총선에서 이런 부도덕한 정치인들의 심판이 반듯이 가려져야 한다.

현명한 정치가의 절대 덕목은 무엇인가? 로버트 캐플런카는 그의 저서 ’현명한 정치가‘에서 정치 지도자의 오만을 경고하며, 더 큰 비극을 피하기 위해 “비극적으로 사고하라”고 말했다. 비극적 사고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두려움과 불안에 근거한 선견지명을 갖추는 것을 뜻한다. 질서가 없으면 자유가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옳고 그름도 따질 수 없기 때문이다. 고대 페르시아의 철학자 ‘아부 하미드 알가잘리’는 이를 “무정부 상태 1년이 폭정 100년보다 더 나쁘다”는 한마디로 요약했다. 질서가 없으면 정의도 존재할 수 없다. 괴테 역시 “불의는 일시적이고 고칠 수 있는 반면 무질서는 인간 진보의 가능성 자체를 파괴한다”며 질서의 절대적 필요를 인정했다. 비극은 하나의 선과 또 다른 선의 고통스러운 싸움이다. 위대한 정치가는 최악의 결과를 피하기 위해 불안한 선견지명을 갖추고 미리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인간 본성의 가장 비열한 힘들에 맞서는 게 아니라 그것들과 협력해야 한다고 현실주의 정치학자 ‘한스모겐소’는 말했다. 다수의 권력으로 무리한 정책, 탄핵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 링컨, 루스벨트, 처칠, 아이젠하워, 부시는 비극적 감성이 풍부했던 위대한 정치가들이었다. 지식인들은 언제나 어려운 선택에 직면하지 않은 채 옳음의 편에 서며, 도덕적 이상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겼다. 대중은 인도주의적 관점과 윤리적 주장에 종종 매혹되며 관심을 보인다. 그러나 관료적 책임은 그 반대다. 고위 권력자에게 흑과 백이 분명한 해결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현실은 내키지 않은 타협을 요구하고, 정책은 때때로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정치가에게는 광대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모든 권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적고 선택지는 좁으며, 이 모든 것은 규율과 어려운 결정을 요구한다. 비극에는 이런 모든 정치적 통찰로 가득하다.

그렇다. 금년에는 견리망의가 아닌 ‘견리사의(見利思義)’의 사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익을 보면 의리에 맞는가 어떤가를 먼저 생각하라는 뜻이다. 우리 정치권은 그동안 최악의 신뢰도와 형편없는 정치력을 보여줬다. 내 편만 옳다고 응원하는 팬덤 정치 앞에서 견제와 균형은 길을 잃고 있다. 국가의 장래를 위해 오만방자하고 당리당략에 눈이 어두운 정당과 정치인들을 4월10일 투표로 과감히 퇴출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국가 미래를 위해 복지정책에 신경써주길 당부한다.

“어리석은 사람이 마지막에 하는 일을 현명한 사람은 순식간에 한다. <마키아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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