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복지신문=장경근 기자] 제36차 여의도cbmc 미래포럼(회장 허정)이 23일 오후 7시30분 여의도백화점 911호 미래포럼 사무실에서 개최됐다.
이날 포럼은 김성권 회장을 강사로 초빙, 그의 체험적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1시간 30분동안 진행됐다. 사회를 맡은 신미선 총무는 김 회장에 대해 ‘마이너스 통장을 빚내 해외 성전을 지으신 분이다’라고 소개했다. 믿음 위에 덕을 쌓고 그 덕위에 사랑을 실천해온 하나님의 사람임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김 회장은 울진군 백암온천에서 온천물을 먹고 마시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시골에서 쭉 자라면서 교회는 고교졸업 무렵부터 다니기 시작했다. 김 회장은 “하나님을 모르는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형님이 매를 맞고 교회를 다닌 덕에 나는 매를 맞지 않고 다닐 수 있었다”며 “집사람은 교회학교에서 가르치던 학생이었다”며 가족사를 소개했다.
회사는 성경적 경영 마인드에 입각해 운영해 왔다. 37년 동안 개인 사업자로 있다가 2012년 법인으로 전환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그 출발은 20만원을 차용해 친구의 공장 모퉁이에 남신기업사를 차리면서다.
그 당시부터 친구와 동업을 시작했다. 한때 "친구와 동업을 하지 않으면 전적으로 밀어주겠다” 는 모 업체 간부의 권유가 있었으나 친구와 함께 23년 동안 동업을 지속했다.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동업을 23년 동안이나 할 수 있었느냐?’라고 의아해 하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어떤 일이든지 상대편을 배려해주면 문제가 없다. 내 기억으로는 친구에게 ‘아니다’(NO)라는 말을 거의 한 적이 없다. 내 의식 속에는 항상 친구가 먼저였다. 차도 나보다 친구를 먼저 사줬고, 집도 나보다 먼저 사줬다. 대개 그런 식이었다.”
김 회장이 배려와 섬김으로 한 세상을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신실한 믿음 때문이다. 삶의 우선순위에서 하나님은 언제나 첫 번째였다. 하나님이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않았다.
김 회장은 1997년 초 친구가 독립을 제안해 왔을 때 창세기 13장 9절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말씀에 입각해 친구와 아름다운 이별을 도모했다. 역시 배려정신이며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은 자비를 베푼 것이다. 그러면서 당시 장로인 김 회장은 친구와 동업하면서 예수그리스도의 품으로 인도하여 주님을 영접하게 하여 권사로 섬겼다.
1975년에 가스렌지 회사인 R사의 협력업체인 남신기업을 시작했다. 승승장구하던 중 1997년 10월 IMF를 맞으면서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휘청거렸다. 일이 떨어지고 수금도 반 토막이 나고 말았다. 인내하기 힘든 어려움을 겪어야 했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3년 전 남신기업에서 ‘주식회사 남신’으로 회사이름을 바꾸고 본격적인 생산체제를 갖추어 나가던 중 올해 초 R사로부터 ]아이템을 내고 하겠다‘는 뜻밖의 통보를 받게 됐다. 직접하겠다는 의사를 비춰온 셈이다. 매출 80%가 급락하는 위기상황이 찾아들었다.
그나마 협상을 통해 올 6월에 10%, 7월에 20%… 삭감하다가 내년 10월에는 전량을 R사에서 제작하도록 했다.
바로 그 무렵, 김 회장은 참으로 용의주도하신 하나님을 직면하게 된다. 하나님은 어려운 처지의 김 회장을 그냥 보고만 계시지 않았다.
R사에서 통보가 온지 얼마 되지 않아 S전자의 냉장고 부품을 제작하는 모 기업에서 제품을 생산해달라는 제의가 들어왔다. 6월에 10%, 7월에 20%…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R사에서 줄이는 만큼 채워주시겠다는 것이었다. 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인가.
김 회장은 초창기 대림감리교회에 등록해 열정적으로 섬기다보니 집사가 된지 2년 만인 1984년에 권사가 됐다. 그 때쯤 현재 CBMC여의도지회를 섬기고 있는 장동걸 회장을 만나 20여 년 동안 공동체 안에서 복된 생활을 함께 하고 있다.
“우리는 선교의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늘 부담으로 여겼다. 그 마음에 하나님이 주신 감동으로 2011년 장로 은퇴를 기념해 필리핀에 교회를 세우기로 작정했다. 현지 선교사님에게 건축비용을 알아보니 2000만 원 정도 든다고 했고, 기꺼운 마음으로 곧바로 시행해 필리핀 현지에 성전을 건축했다. 헌당식예배를 드리러 손자손녀들을 데리고 그곳에 갔을 때 마침 필리핀 현지 어린이들이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맞춰 춤을 추는 등 한류문화에 동화되어 가고 있어 현지인들과도 자연스레 어우러지게 됐다.”
김성권 회장은 땅끝까지 이르러 하나님의 증인이 되기 위해 오늘도 열방을 품은 기도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김 회장은 “여태 하나님 은혜로 살아왔다”면서 “늘 감사하면서 현재 섬기는 교회와 지방회, CBMC에 주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특히 30여 년 동안 매주 개인과 회사 명의로 드리는 감사헌금과 20년 넘게 지속되어온 가정예배가 가정과 기업을 지키게 한 축복의 통로였던 것 같다며 “거룩한 욕심으로 도전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우리 모두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